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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지금은 우리가, 박준

by 짙음새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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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 지금은 우리가, 박준

말의 밝기

 세상의 모든 것들은 빛을 낼 수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인의 시를 하나 인용하고자 한다. 천양희라는 시인인데, 나는 그녀의 '참 좋은 말'이라는 시도 참 좋아한다. 그녀의 시 '그 사람 손을 보면'에서는 어떻게 모든 것들에게서 빛이 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구두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구두 끝을 보면
검은 것에서도 빛이 난다
흰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창문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창문 끝을 보면
비누 거품 속에서도 빛이 난다
맑은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청소하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길 끝을 보면
쓰레기 속에서도 빛이 난다
깨끗한 것만이 빛나는 것은 아니다

마음 닦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손을 보면
마음 끝을 보면
보이지 않는 것에서도 빛이 난다
보이는 빛만이 빛은 아니다
닦는 것은 빛을 내는 일

성자가 된 청소부는
청소를 하면서도 성자이며
성자이면서도 청소를 한다

「그 사람 손을 보면, 천양희

 말도 빛이 날 수 있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 멋진 어른을 만났다. 지휘관이셨는데 내가 어려움에 헤매고 있을 때, 그분은 내게 빛과 같은 귀한 말들을 많이 해주셨다. 냉철한 듯, 포근한. 양립하기 어려운 그 느낌들이 조화를 이루며 말속에 녹아 있었다. 지나버린 사랑, 툽툽한 용기, 날카로웠던 두려움과 우울. 말속에 녹아있는 이야기는 내 추상적인 삶을, 디딜 수 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분의 소중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되어, 내 삶을 이렇게나 씩씩하게 버틸 수 있게 한 것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참 멋진 어른이셨다. 내 삶에 그런 어른다운 어른을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분의 말은 세월을 통해 단단하게 다지고, 또 닦아낸 것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그분의 말을 무엇으로든 담아내고 싶었다. 어쩌면 내 눈동자로 그 말을 이따금 머금고서 그분을 대했던 것 같기도 하다.
 말은 어떻게 닦아낼 수 있을까? 말은 곧 맘이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바로 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자주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한다. 소리는 의미가 없는 단위이다. 음운론으로 이야기하자면 '음성'은 소리이다. 뜻을 변별해주지 못하는 파동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음에 없다면 그것은 소리인 것이다. 마음이 바탕이 되어, 그것을 입으로 표현한 것이 말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말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의 생김새를 추론해 낼 수 있다. 온유하고 사랑이 가득한 말을 쓰는 사람의 마음속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생김새일 것이다.
 그렇기에 말은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군대에서 멋진 어른을 만나고 감응을 받은 것처럼. 말은 마음을 떨리게 한다. 샘솟게 한다. 생동케 한다. 그렇게 마음을 떨리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늑대들이 하울링하듯, 같은 음끼리 만나면 진동의 세기가 함께 커진다. 비슷하게 말을 통해 같은 마음이 만나면, 그 마음이 함께 울리며 커지게 된다. 말속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있다. 서로 같은 부분에서는 공명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상쇄시키기도 하면서 서로에게 기쁨과 위안이 된다. 삶은 어쩌면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로 함께 떨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삶일까? E.M. 포스터는 '소설의 양상' 작품에서 호모픽투스(이야기하는 동물)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조너선 갓셜이라는 학자에 의해 이야기하는 존재로서 인간을 구체화시킨다. 즉 이야기는 우리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시와 내 삶을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참 많다. 그럴 때 내 이야기들은 과거라는 어둠 속에서 다시금 밝게 빛을 내기 시작한다. 내가 수업을 할 때면 몇몇 아이들의 눈에 내 이야기가 가득 담겨 빛나는 경험들을 자주 한다. 그리곤 생각하는데, 내가 한 이야기들이 더욱 빛이 나기 위해서는, 행동을 통해 말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머레이비언의 법칙이라고, 말보다는 행동을 통해 의미가 더욱 잘 전달된다고 한다. 결국 몸짓, 눈짓도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말이 빛을 내기 위해서는 후에 닦아내는 시간을 고요히 가져야 하는 것이다.
 박준의 시에서도 남에게 건네는 말보다,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이 더 오래 빛난다고 한다. 말을 다져나가는 것은 내 스스로의 삶. 이야기를 지켜나가는 것도 스스로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들을 닦아내고 살아간다. 또 이는 다른 의미로도 와닿는데, 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이다. 별 밝은 날은 타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날로 볼 수 있다면, 나의 이야기는 작고, 낮고, 약하게 반짝여야하는 것이다. 타인의 반짝임이 나의 반짝임과 함께 울릴 수 있도록 같은 음으로 낮게 공명하는 순간. 우리의 밤하늘은 더 이상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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