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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맹인 부부 가수, 정호승

by 짙음새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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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 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 맹인 부부 가수, 정호승

 

이웃과 나

 어제, 오늘 계속 눈이 왔다. 소복하게 쌓여 제법 밟는 맛이 살아난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에 발끝에 집중하게 된다. 어제와 오늘은 참 춥다. 겨울이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왔다. 왔다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 동시에 귀 끝을 파고드는 겨울 추위가 놀랍다. 학생들과 함께 강당에 모여 회의를 하고 있으니, 우리들의 온기가 얼마나 서로를 지탱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히터를 틀지 않아도 함께 있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나를 데운다. 최근 몇 년 간에는 코로나로 인해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이 부족했던 듯싶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부른다. 사회적인 활동이 인간의 본질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라는 뜻이라 생각한다. 코로나로 다양한 활동들이 제한되자, 이에 우울 증상을 겪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사람은 결국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존재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서로와 대화하고, 온기를 느끼는 경험은 그토록 인간에게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오늘 한 학생이 눈은 아름답지만, 온기를 뺏아간다고 했다. 그토록 차가운 것이 손아귀로 힘껏 쥘 때, 서로 부대끼며 단단하게 붙는다는 것이 참 놀랍다. 학교 앞을 지나가며 한 학생이 만들어낸 눈사람을 보았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란히 하기 어려운 것들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것들을 보면 예쁘다고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다. 그 차가운 것들이 단단하게 모여 만들어진 눈사람을 보자니, 사람은 온기로만 사는 것도 아닌가 싶다. 맹인 부부 가수도 사람들을 기다리며 눈사람이 된다.  맹인 부부 가수가 기다리는 것도 눈사람이다. 어쩌면 맹인 부부 가수는 온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들과 함께 추위를 느껴줄, 그들의 입장에서 함께 눈사람이 되어줄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쭙잖은 위로는 필요없는 것인지 모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과 이 순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존재일 것이다.

 쇠귀는 함께 맞는 비에서 비가 올 때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아닌, 함께 비를 맞아 주는 사람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로 간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서로 구체적으로 뿌리 내리고 있는 혹은 발을 딛고 있는 구체적인 경험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위치에서는 관점을 달리할 수 없다. 관점을 달리 한다는 것은, 타인의 경험으로 기꺼이 이동하고자 하는 용기이다. 사다리 위에서 간판을 다는 사람이 사다리 밑의 사람의 시선과 같을 수 없다. 이에 그를 느끼기 위해서는 전인적인 들음 혹은 사다리 밑으로 내려가는 실천이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러한 전인적인 들음을 실천하려고 하고 있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내 눈앞의 삶이 너무 매몰되어 누군가의 삶이 들어올 틈을 주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볼 시간을 잃어가고 있는 내 삶이 참으로 서글프다.

 오늘 아침에 장애인 연대에서 지하철 타기 시위 관련 뉴스를 봤다. 기사 보도 내용에 대한 생각들이 다양하게 머릿속을 스쳐갔다. 지하철을 아침에 타고 일터로 가야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지하철을 이용하고 싶은 장애인들의 입장이 모두 간절한 듯 보였다. 문제는 댓글이었다. 댓글에서 드러나는 그들의 생각은 정말 옳았다. 비판의 여지가 없는 생각들이었다.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면서, 본인의 자유를 바라지 말라'는 어조의 말들이었다. 정말 옳았다. 그러나 마음 한편이 쓸쓸해졌다. 진리의 빛과 같은 말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은 대부분 타인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하고 뱉는 말들이다. 이성은 구체적인 환경에서 닦아냈을 때 그 가치를 드러낸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애인 연대의 그 행동이 물론 과격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는 몇십 년 동안을 조용히 참아 지내왔다"라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 아니라, 함께 싸워줄 동지"라고 했다. 그들과 한 순간이라도 함께 그 고통을 겪어보았다면, 이동권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그들의 구체적인 조건에서 발을 들이밀어 보았더라면 그리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버스, 지하철, 계단. 그 모든 것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겪어보았다면, 그들이 왜 그토록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밖에 할 수 없었나를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쓸쓸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웃에 대한 사랑과 마음은 함께 할 때 만들어 질 수 있고, 그들의 구체적인 삶을 경험할 때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그러한 경험을 삶을 통해 실천하고 있는가? 나도 장담하기 어렵다. 주위 사람들은 성공해서 돈 많이 벌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새 나약한 생각이 되어버렸다. 혼자 스스로 잘 살게 되었을 때 선심 쓰듯 이웃을 돕는 것은 오히려 사랑의 결핍을 부르는 행위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어려워도 함께 산다는 것의 가치를 알아가기에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차갑다. 기회는 말라가고, 경쟁과 시기는 쌓여만 간다. 어쩌면 우리는 눈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이 차가운 세상에서도 우리는 눈덩이처럼 뭉칠 수 있음에도 말이다. 언젠가 우리가 눈사람이 될까? 누군가와 그저 곁에서 함께 기다려주는 그런 차갑고도 따스한 눈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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