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 소개

봄 타기 좋은 시 - 봄 시 모음, 봄 시 두 편 (1)

by 짙음새 2023. 3. 3.
SMALL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 정호승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첫사랑, 고재종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란 작품은 굴뚝청소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뫼비우스의 띠에 대한 내용이 뒤를 잇는다. 뫼비우스의 띠는 기다란 직사각형 종이를 한 번 비틀어 양쪽 끝을 맞붙여서 이루어지는 도형인데, 안팎이 구분 없이 끝없이 이어진다. 안에서 시작해 선을 곧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바깥을 따라 시선이 움직인다. 드디어 봄이 되었다. 어느새 시작의 시간이 되었는데, 작년을 돌아보니 나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지 모호해진다. 오늘 입학식 후 처음으로 수업을 들어가는 날이다. 그래서 설레는 맘도 있지만, 시작이 아니라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도 든다. 우리 학교에 적응하고 1년이라는 시간이 새로움이라는 옷만 입고 다시 찾아온 것 같다.
 26살 처음으로 학교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나누었던 시는 고재종의 첫사랑이라는 시였다. 사랑을 주제로 한 이 시는 교과서에서도 앞쪽이라 아이들의 관심을 사로잡기에 매우 좋았다.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아이들과 함께 봄을 시작하는 것만큼 즐거운 봄맞이가 있을까? 몇 없는 내 연애 이야기가 마치 드라마인양 함께 앓고 기뻐해주는 것을 보는 것도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이 시는 첫사랑을 이루어낸 기쁨과 성숙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석이 되기보다는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교과서에서는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라는 구절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는 성숙한 사랑을 이루어낸 화자의 모습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봄꽃'이 보조관념이고, '성숙한 사랑'이 원관념인 은유로서 이 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기엔 왠지 어려운 것들이 많다. 성숙한 사랑을 이루어냈다고 했을 때 이를 왜 상처로 표현한 것일까? 그리고 눈꽃을 황홀이라고 말하며 첫사랑에 대해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점에서 의문들이 들어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며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되새겨보았다. 그랬더니 조금씩 그 의미가 나에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대학교에 가서야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성에 대한 마음을 읽는 것에서부터 배려하는 것 하나하나가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부족했던 내게 사랑이 찾아왔고, 준비 안 된 내게 사랑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하지만 첫사랑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계절에 따라 다시금 피어오르기도 한다. 봄꽃은 성숙한 사랑이라고 교과서에서 묘사하지만, 이는 너무 추상적으로 큰 개념이기에 아이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이 많다. 내 경험에 따르면 눈꽃이 지고, 다시 피어오르는 봄꽃은 그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즉 그리움이 봄꽃처럼 피어오르는 것이다. 기억은 꽃망울처럼 다음을 기약한다. 그렇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 다시금 피어나는 사랑이 바로 봄꽃인 것이다.
 봄에 대한 시를 읽다가 보니 문득 떠오른다. 수업을 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는데, 내게 시를 선물해준 아이도 있었다. 정호승의 '봄길'이라는 시는 1년 전의 한 학교에서 학생 한 명이 내게 필사해 준 시다. 이 시를 곱씹다 보면 참 향기로운 구절들이 많다.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라는 구절이 내게 참 은은하게 다가온다. 끝과 시작이라는 것이 이 시에서 함께 배치되어 나타나니 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봄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새로움일 것이다. 새로움이라는 것은 그 본질에 반복이라는 것이 내재해 있다. 봄은 계절에 따라 반복되나, 그 봄을 맞이하는 나는 조금씩 변화한다.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상황에 우리가 있느냐에 따라 그 경험을 다르게 찾아온다. 결국 새로움은 반복이 다른 옷을 입고 찾아온 것이지 않을까?
 올해도 나는 반복하고 있으나 1년 전과는 봄의 의미가 조금 다르다. 새롭게 찾아온 반복에 참 감사하다. 올해 봄에는 어떠한 기억과 의미를 담아낼지 고민하고 있으니 봄바람이 창문을 타고 스며들어 온다. 올해는 작년과 다르게 귀한 사람이 내 삶에 찾아왔다. 그 사람 덕에 내 삶의 의미가 풍부하고 다채로워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에서도 말하듯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다. 반복되는 계절 속에서 함께 기억을 입힐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삶에 차곡차곡 쌓여갔으면 좋겠다.
 

 

 

자화상, 윤동주 (성찰 시, 일제강점기 시)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

kowriter30.com

 

 

고향 관련 시 모음(정지용, 백석)

고향 정지용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港口)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 끝에 홀로 오르

kowriter30.com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