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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봄날의 애상 - 봄 시 모음, 봄 시 세 편

by 짙음새 202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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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선운사에서, 최영미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 김소월

 

 올해는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주제를 정해 함께 쓰기로 했다. 봄날에 어떤 주제를 아이들이 생각할지 설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봄날의 주제로 고르기에는 어색한 것이 나왔다.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에 대해 고민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이에 셸리 케이건의 책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읽어보기도 했었다. 죽음은 다른 책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에서도 등장한다. 심리학에서도 나오는데 내가 대학을 다닐 때 프로이트의 심리학에서 타나토스라는 개념을 언뜻 살펴보기도 했다. 죽음이란 무엇일까? 사실 봄이라는 계절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기 가장 좋은 계절일 수도 있다. 봄의 가운데 꽃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웨인 왕의 작품인 '라스트 홀리데이'를 봤다. 조지아 버드라는 주인공이 불치병에 걸려 남은 몇 주를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채워가며 삶의 의미를 알게 되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역설적이게도 삶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참된 삶을 살아가는 시작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죽음이 곧 시작인 셈이다. 그래서 봄의 의미로 색다르게 느껴진다. 꽃이라는 것이 피는 계절임과 동시에 꽃이 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한 학생이 꽃을 그리며 삶과 죽음을 꽃만큼 잘 담아내는 것은 없다고 했다. 정신적 성숙도는 나이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 듯하다. 삶을 하나하나 곱씹어보며, 삶을 사랑하는 것에서 성숙도는 결정되는가 하며 아이들을 보며 배운다. 

 어쨌든 봄이란 삶과 죽음의 시간이다. 시 하나를 살펴보자. 김소월의 산유화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내포하며 1연과 4연은 각각 대칭을 이룬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는 생명이 피어나는 것으로 삶을 의미한다. 4연의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는 1연과 반대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화자는 '슬프다'는 감정의 표현 없이 담담하게 꽃의 생사를 묘사하고 있다. 왜 이렇듯 담담하게 화자는 상황만을 묘사하며 감정을 절제해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이와 반대로 김영랑의 시는 봄을 온 마음을 다해 앓고 있다. 그 이유는 모란이 '폈다'가 '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모란은 화자가 손꼽아 기다리던 대상이다. 모란이 지고 '삼백예순 날을 하냥 섭섭해 울' 정도니 말이다. 확장해서 본다면 화자에게 모란은 삶의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모란이 없는 세월은 '섭섭'한 세월이다. 그래서 봄을 또 기다리며 자신의 마음을 토해낸다. 두 시는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두 시에서도 공통점은 '꽃'과 '반복'이다. 즉 자연의 순환이다. 꽃이 지나 우리는 알고 있다. 다시금 새로운 꽃이 피어날 다음 봄을 말이다. 

 순환 속에서 놓여서 우리는 다채로운 감정을 경험하고, 또 새로웁게 기억을 만들어 내며, 그것을 지워내려 고통스러워한다. '선운사에서'는 꽃을 통해 우리의 경험들과 기억을 자세히 보여준다. 꽃이 지는 것과 헤어짐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시를 전개하고 있는데, 어조와 율격을 맞춰서 표현하여 시가 부드럽게 잘 읽힌다. 이 시에서도 참 재밌는 것은 대칭이라는 것이다. 꽃은 이리도 시작과 끝을 잘 보여주는 소재인 것이다. 우리는 순환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을 토해내고, 씻어내며, 또 다른 봄을 준비한다. 봄바람이 불어오면 꽃 때문에 향기가 다른 것도 있지만, 기억이 봄바람에 입혀져 가슴을 한번 훑고 지나간다. 그리고 봄이 가져다준 바람결에 스스로의 과거를 훑기도 하고, 새로운 계절의 시작과 끝을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1년 뒤의 나에게 편지를 썼다. 1년을 시작하며, 1년 뒤의 나를 기약해 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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