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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첫눈 오는 날 - 겨울 시 모음 (1)

by 짙음새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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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며칠 너 보지 못해

목이 말랐다

 

어제 밤에도 캄캄한 밤보고 싶은 마음에

더욱 캄캄한 마음이었다

 

몇날 며칠 보고 싶어

목이 말랐던 마음

캄캄한 마음이

눈이 되어 내렸다

 

네 하얀 마음이 나를

감싸안았다

 

- 첫눈, 나태주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에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 겨울 사랑, 문정희

 


 

  며칠 눈이 내렸다. 정지용 시인이 '인동차'라는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이얗'다. 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고, 거기에 귀와 코, 입을 만들어 생명을 불어넣는다. 저리도 차가운 눈을 만지면서, 그것을 생명으로 빚어낸다는 것이 놀랍다. 최근에 나는 동상에 걸렸다가 나았다. 뒤꿈치가 푸르댕댕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에 살짝만 닿아도 아렸다. 아린 정도로 그치면 좋을 것을, 동상이란 그렇지 못하다. 가렵게 하여 꼭 한번 건드리게 만든다. 그때 뒤꿈치를 만지면 가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대가로 아픔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탐탁지 않은 거래에 곧바로 수긍하며 또다시 가려움과 고통 사이의 신경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도 시린 겨울이 위의 시들처럼 사랑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참 재미있는 일이다. 눈과 겨울의 차가운 속성은 인간에게 두려움의 존재여야 마땅하지 않을까? 듬직하고 씩씩해 보이는 사람도, 찬 바람이 눈과 함께 깊이 스미면 몸을 꽁꽁 싸맨 채 어깨를 접는다. 겨울은 그만큼 아린 것이다. 그런데 왜 눈과 겨울은 묘하게 사랑과 이미지가 겹칠까? 문정희 시인의 '겨울 사랑'에서 그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네 하얀 생에 속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어떤 색깔일까? 김소월 시인이 '여인의 마음'을 눈에 비유한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이들에게 하얀 빛깔로 존재하고 있지 않을까? 순수하고 선한 존재로서 말이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이는 하얗다. 방금 씻어낸 듯 곱고 정하다. 문정희 시인이 말한 '하얀 생애'인 것이다. 그리하여 하얀 생애를 함께 하며 나는 발자국을 이따금 남길 수 있는 것이다.

 순수로서 사랑의 이미지는 백석의 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그렇듯 그녀를 떠올리는 시점은 '눈이 푹푹 날리는' 어느 겨울날이다. 쓸쓸함 속에서 그녀에 대한 상상은 더욱 구체화된다. 눈이 내리는 밤. 그녀와 함께 마가리(오두막)로 들어가는 상상을 한다. 또 그녀는 눈과 함께 고조곤히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넨다. 사랑은 눈송이처럼 다가오는 것이다. '서성대'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녀를 상상하며 그려내는 하이얀 세상은 오로지 스스로의 것이요, 상상만으로도 충만한 하나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반면 실제 세상은 '더럽'다. 화자는 세상이 더러워서 버리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롤랑바르트가 '사랑의 단상'에서 말하는 '둘만의 세계'와 맥이 닿아있다. 순수함은 어떻게 잃게 되는가? 순수함의 반대는 탁함이다. 섞일수록 탁해지는 것이다. 둘만의 세계에서는 너와 나로 존재하기에 다른 것들은 필요가 없다. 너와 내게 만든 하얀 생애는 다른 것의 개입이 없는 순수한 세계이다. 서로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둘 사이에는 그 어떠한 개입도 필요 없는 것이다. 

 나태주의 시 '첫눈'에서 눈은 '네 하얀 마음'이 되었다. 눈은 어쩌면 사랑의 결정인지도 모른다. 눈이 차가운 것은 외로움 끝에 빚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이 말랐던 마음/ 캄캄한 마음'은 어떤 사람을 떠올리며 만들어진 그리움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리움이 모여 '하얀 마음'인 눈이 되어, 화자를 감싸 안고 있는 것이다. 캄캄함, 외로움, 그리움 그 모든 것들은 차가웁다. 그러나 눈은 참 신기한 것이다. 그 가볍디 가벼운 것이 밟으면 뽀드득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뽀드득이란 소리는 서로 알차게 붙는 소리이다. 차가울수록 서로 단단하게 붙어, 투명한 얼음이 된다. 이는 눈이 갖는 사랑의 속성이다. 단단하게 서로 붙어 의지하는 것.

 사랑의 색깔은 매우 흰 것일지도 모른다. 흰 것이 쌓이고 쌓이면 무엇이든 그려낼 수 있다. 그렇기에 눈이 쌓여 하얀 도화지는 사랑을 위한 바탕이 될 것이다. 그 위에 하나둘씩 찍어내는 발자국들이 서로의 삶을 애정하게 만든다.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에서 화자는 순이를 보내고 가슴에 '하얗게' 눈이 내린다. 그리움의 응결이 화자의 가슴속에 쌓이는 것이다. 순이가 떠난 곳에는 또다시 눈이 내려, 순이가 떠나간 발자국을 지워낸다. 그러나 봄이 되니 그녀가 떠난 자리에 오히려 꽃이 피며, 그녀를 더욱 떠올리게 한다. 사랑의 끝은 무엇일까? 잊는 것이지만, 사랑은 잘 잊히지 않는다. 그 자리에는 봄꽃이 피어나고, 다시금 마음속에는 눈이 내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난 발자국 위에 다시금 디딜 발자국을 그리도 새하얗게 기다리는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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