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부끄러운 하루를 보내며
어제, 오늘은 부끄러운 마음이 솟는 것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늘 말을 조심하라며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말실수를 해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때 그 말을 했던 순간 이전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어찌나 좋겠는지 몇 번을 그 생각들로 되뇌는 하루였습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막막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 제가 큰 좌절감을 불러왔습니다. 좌절한 만큼이나 자책이 그 몸집을 부풀려 거대하게 찾아왔으니, 그 앞에서 나란 존재는 그다지도 왜소하고 보잘것없이 보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쉽게 적어내는 글 한쪽뿐인 것이 애달프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내가 무심결에 이야기를 건네고, 그 아이에게 그 말이 닿기까지 그 짧은 순간에 내 인격은 깨지고 뭉개졌습니다. 다시금 나를 보며 나는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가를 느낍니다. 한 마디 말을 건네고 그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욱신거리었습니다. 그 아이의 눈동자는 나를 홀로 덩그러니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움이 함께 찾아왔습니다.
오늘 오전은 내게 못된 말들을 계속 꺼내었습니다. '제정신이 아니다',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했느냐' 등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따라 윤동주의 시가 더욱 와닿는 듯합니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라는 어려운 시절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를 늘 고민했습니다. 그 성찰 끝에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부끄러움을 느꼈지요. 그래서 '서시'에서도 말하듯,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 되고자 양심에 맞게 살아가려고 부단히 애쓰신 분이라 하겠습니다.
저를 돌이키니, 평소 게으름을 피우며 청년으로서 올바르게 해야할 일들을 늘 미루어두고 살아왔던 듯합니다. 5, 10분을 쉽게 미루며 스스로의 약속을 어기는 과정에서 저는 제 삶의 주체성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러니 온갖 잡생각들이 머리를 꽉 채우고, 결국 그 아이에게 맘에도 있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게 된 것이지요. 이제 이러한 허물을 고치려 합니다. 매일매일을 신실하게 채우며, 하루를 돌아봤을 때 부끄러움이 남지 않는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 작은 것들이 중요합니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작은 행동은 결국 그 몸집을 키워 폭풍처럼 몰아닥치기 때문입니다. 어찌 평소 행실에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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