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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바다가, 허수경 (바다 시, 사랑 시)

by 짙음새 2023.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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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허수경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바다와 사람

 오늘은 거제에 있는 매미성이란 곳을 왔습니다. 매미성은 태풍 매미가 왔을 때부터 지은 것이라 합니다. 이를 지은 사람은 그 근처에 사는 주민이라고 하는데 벽돌을 하나하나 쌓은 모양을 보니, 그분이 뚝심이 느껴지는 듯도 합니다. 매미성은 그 자체로도 장관이지만, 몽돌로 가득한 앞바다와 어울려 푸른 기운을 뿜어냅니다. 몽돌 사이사이로 파도가 들이치면, 바다 냄새와 소리들이 함께 퍼져나갑니다. 파도와 바람과 돌과 성. 그 묘한 어울림에 계속 이곳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매미성의 앞 바다를 보며 상념이 문득 스쳐 오늘은 바다에 관한 시를 찾아보았습니다. 매미성 앞바다에는 부산으로 가는 거가대로도 보이고, 그 거가대로가 놓인 푸르른 섬들이 수평선에 변주를 주고 있습니다. 옛 기억을 돌이켜보니 동해의 바다도 바다라지만, 남해의 바다는 섬들이 가득해 그 풍경이 역동적이라 합니다. 그리고 섬 안에 블록처럼 놓인 알록달록한 작은 집들은 이야기를 저마다 머금고 있는 듯해 온갖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바다는 그 자체로 푸르른 생명의 원천이라 하겠지만, 그 깊이를 헤아리면 무거운 심연으로 가득합니다. 어쩌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바다를 만나는 것과도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깊고 어두운 그 사람의 시간이 한순간에 들이닥치는 일이라 하기에 그렇습니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준비 없이 닥치는 것이라 할 수 있기에, 늘 서툴게 되는 듯합니다. 그래서 '혀가 없이', '손이 없이' 만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바다만큼 빠르게 변하는 것이 또 있을까요? 고기와 소금 등 인간에게 생명을 게워내면서도, 파도와 태풍으로 일 순간 그것을 앗아가기도 합니다. 바다만큼이나 인간도 그렇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누군가를 만날 때, 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없습니다. 늘 아는 사람이라는 과거로 두고, 두고 새 사람을 맞아들이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맞이하는 새로운 이는 그 전의 모습과는 다른 양상이고, 개체입니다. 바다처럼 온 사람이지요. 파도에 밀려가지 않고, 고요히 잠수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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