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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린 모두 난쟁이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by 짙음새 2023. 3. 14.
SMALL

소외된 삶에 대하여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68p  우리나라 

 

 

 27일 한국교육개발원이 펴낸 ‘교육 분야 양극화 추이 분석 연구’ 보고서를 보면, 교육분야 양극화 지수 가운데 하나인 ‘이동성 감소’(불균등 배분)의 2010년 대비 2020년 변화를 나타내는 변동성 지수가 117.3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 지수는 소득 하위 20% 집단이 교육분야 핵심 지표에서 상위 20%에 속할 가능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변동성 지수가 100보다 높을수록 10년간 양극화 정도가 심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세부 지표에서 보면 사교육비와 역량(학업성취) 등에서 양극화 수준이 심각했다. (2021.01.28. 한겨레 신문)

 사회 문제를 바라볼수록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사회적 불평등은 왜 발생하는 것인가에서부터, 무엇이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까지 말이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이라는 책을 읽었다. 우리는 정의를 이야기하며 '똑같은 출발선'에서의 '경쟁'을 강조한다. 이는 허용적인 평등이라고 볼 수 있다. 기회를 평등하게 주고, 각자가 능력에 맞게 자신을 증명해 낼 수 있게 만드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는 시험이나 경쟁에서 스스로가 증명되었을 때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차별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샌델은 이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 '과연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준다고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인가?'라고 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수능을 치른다고 하더라도, 과외를 받고 커리큘럼에 따라 사교육을 잔뜩 받은 학생들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 대치동 광고를 본 적이 있다. 대치동의 한 학원에서 몇 명이 서울의 상위권 대학을 갔는지 퍼센트로 정리해 놓은 광고였다. 이렇듯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지려면, 평가 외적인 요소들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한다. 평가 외적 요소라 함은 부모의 재력이나 지위, 혹은 지역 사회의 문화 등이 될 것이다. 

 그러나 평가 외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기란 어렵다. 우리가 능력이라고 믿는 것들도 환경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 많다. 교육 사회학에서도 환경의 중요성을 늘 강조한다. 슈테른의 폭주설에나 레빈의 체제설을 보면 환경에 의해 지적 잠재력이 개발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반드시 해야할 발달 과업이란 것이 있다. 이를테면 성실, 근면, 자존감 등의 성격을 청소년기에 다양한 학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에릭슨이라는 학자의 생각인데, 이 발달 과업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하게 되면 성격 발달에서 차이가 나게 된다. 이런 것처럼 환경이 인간에게 미치는 것은 성격 외의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부르디외라는 철학자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사회적 현상을 설명한다. 아비투스는 내면화 된 문화자본이다. 우리는 이를 주로 습관이란 용어로 부르는데, 학교에서 평가하는 요소들은 이런 문화 자본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어 교과 과정에서 '독서'가 있는데, 독서력은 어릴 적 형성된 습관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중,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독서력을 갖추려고 한다면 에너지가 더욱 많이 드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아비투스에 의해서 학교 생활에서 성취감 대신 열등감을 얻게 된다면 그 성격이 이 학생의 미래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환경은 누가 제공하는 것인가? 우리가 태어날 때 부유한 가정을 택할 수 있다면야 좋겠다만,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태어나는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지리적 여건이 그 나라의 문화, 경제 등의 요소를 크게 좌우한다고 한다. 나라 간 빈부 차이 또한 결국 그 나라의 '노력'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의 '운'이 문제였던 것이다. 운에 의해 권력와 부가 좌우되는 것에 대해 우리는 우선 공정치 못하다고 느낀다. 시험을 예시로 든 것처럼, 시험에서 평가되는 요소는 그 사람의 노력에 의한 능력이어야 하지, 환경에 의해 형성된 능력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금수저이기 때문에 높은 성적을 받고 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우리가 옳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사회 구조, 부의 대물림은 그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고, 경직된 사회는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상실한 사회이다. 쇼펜하우어는 '불안정한 구조'는 생동하는 사회에서 보여주는 가장 '안정된 구조'라고 하였다. 결국 변화하며 함께 호흡하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환경에 의해 형성된 부의 세습이 타인의 자유를 제약해서 되겠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우리의 조상은 상속, 매매, 기증, 공출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아머니는 나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엄마를 잘못 두어 이 고생이다. 아버지하고는 상관이 없단다."

-74p

 

 

인간다움에 대해

 자본주의가 왜 무서운 것인지, 그리고 자본주의를 통제할 수 있는 시민들의 연합이 왜 필요한지 우리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에 놓였다. 우리 사회는 자본가들을 욕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 무시무시한 자본가를 만들어낸 구조에 대한 관심은 적다. 그리고 뭇사람들이 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을 하면 오히려 그들이 이보다 효율적인 이념은 없다며 스스로 체념한다. 물론 자본주의가 현대 사회를 거쳐 짧은 시간에 효율성을 보인 이념인 것 같다. 그러나 효율성이라는 지붕 아래에서 자본주의는 인간다움을 삼키며 그늘을 더욱 짙게 드리우고 있다. 자본에 의해 인간은 조금씩 주체에서 객체로 밀려나고 있다. 북한이라는 왜곡된 공산주의 국가를 근거로 하여, '다른 대안은 없다'라는 답변은 그 힘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부당한 처사에 대해 말한 자는 아무도 모르게 밀려났다.

공장 규모는 반대로 커갔다.

-92p

 

 자본이 인간을 삼킨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산업화에서부터 이미 그 무서운 이를 드러내고 인간을 삼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그 거대한 담론에서 어쩔 수 없었다. 거대한 담론은 노동 운동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흐름에서 노동 운동은 늘 있어왔다. 최근 그 노동 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강하지만, 노동 운동의 일면에는 우리의 목소리가 있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신자유주의를 천명하는 미국에서조차 노조 가입을 권하고 있다. 오바마의 연설에서도 노조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나라는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라고 불린다. 경제적으로 도탄지경에 이른 나라가 강대국의 반열에 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분명 문제점들이 있었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는 무엇인가? 산업화 시기에 기억해야 할 역사들이 점차 '잘 산다'라는 목표 하에 왜곡되어 가지는 않았는가? 산업화는 우리에게 물질적으로 윤택한 삶을 가져다주었지만, 정신적으로 많은 것들이 희생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 민주주의의 희생 위에 쌓인 모래성 같은 자본주의를 고수하고 있는지 모른다. 단단한 철학적 근거, 정신적인 뿌리 없이 세워진 우리나라의 부는 결국 사회를 부수는 촉매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정신적 결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사랑과 배려는 말라가고 오로지 성장만을 추구하는 이상한 구조, 비대칭적 구조로 변모했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란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실존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다. 부버가 안타까워했던 도구로서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서로를 이윤 추구의 대상으로밖에 간주할 수 없는 결핍된 삶이 우리들의 관계를 규정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사랑이 없는 욕망만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단 한 사람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모릅니다."

-88p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도구가 아니다. 도구로서 대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벗어날 힘과 연대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누군가 혹은 특정 이념에 의해 나의 행동에 구속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진실을 마주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현실의 벽을 넘어

 

'폭력이란 무엇인가? 총탄이나 경찰 곤봉이나 주먹만이 폭력이 아니다.

우리의 도시 한 귀퉁이에서 젖먹이 아이들이 굶주리는 것을 내버려두는 것도 폭력이다.'

-94p

 

 최근 학교 폭력에 대한 이슈가 크다. 학교 폭력에 관련된 다양한 콘텐츠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유튜버 중에서 곽튜브라는 사람이 한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그는 과거 친구들에게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도, 폭력을 당하지도 않고 자랐다. 나름대로 내 의견을 밝히고 당당하게 살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러나 그때도 무서운 선배와 친구들이 있었다. 바지통을 넓게 해 나팔바지처럼 입고, 머리는 삐죽삐죽하게 울프컷을 하고, 눈에 힘을 잔뜩 주고 무리 지어 다니며 공포감을 조성했다. 그들이 그렇게 공포감을 조성하여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멋있어 보이려고 했던 것일까?

 나는 그들의 눈빛으로도 긴장을 했고, 혹여나 밥을 먹을 때 내 옆자리에 앉지는 않을까 겁을 내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 주위는 최대한 피했다. 같이 엮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이 무리 지어 다니며 했던 행동들은 모두 폭력이었다. 폭력은 자신이 원치 않음에도 타인에 의해 나의 행동이 강요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나는 그들 때문에 학교 생활의 제약을 받고 행동을 두려워하게 되었으니 충분히 폭력의 범위에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이에 나는 난쏘공에서 나오는 윗 구절에 공감했다. 요즘은 세계적으로도 기아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지금도 영양 실조로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을 것이다. 한 번은 가을 방학이라는 가수가 부른 '취미는 사랑'이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가사에는 '커피 한 잔 값을 아껴, 지구 반대편에 보내는'이란 구절이 나온다. 그 구절이 아직 귀에 맴도는 것은 왜일까? 전체를 아울러 볼 수 있는 귀한 가사이기 때문이다. 상위 20%가 나머지 인구의 부와 문화, 권리 등을 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상위 20%는 과연 능력 때문인가 운 때문인가? 대부분 우리 민족이 똑똑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를 가진 수많은 민족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 나름으로 '잘 사는 것'에 대한 기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기준으로 그들을 제단해 가난하고 부유하다로만 판단하려고 한다. 그들의 삶을 바꾸려고 한다. 신식으로, 현대식으로, 깨끗하게. 그러나 이 또한 폭력인 것이다. 그들의 동의를 온전히 감내하는 변화여야 그 변화는 가치가 있다.

 '오래된 미래'에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라는 지역에 가서 그곳 부족들을 만난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현대화된 것들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문화와 정신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자본이 들어오기 전에는 자연의 순환이 있었다. 사회적 연대가 있었다. 그러나 자본이 개입하기 시작하고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레'에서부터 연대가 점차 깨져갔다. 이는 농촌 사회의 붕괴를 가지고 오고, 사회를 조각조각 나누어 개인들은 파편화 되어갔다. 자본이라는 것은 동의를 구하지 않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가 자본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정서적인 안정과 치유, 사람이 아닌가?

 조세희는 이러한 자본의 모순을 보고, 약자들이 폭력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풍경을 소설로 그려냈다. 그러나 이를 그리는 과정이 동화적인 색체가 강하다. 특히 영희가 사라졌을 때, 주정뱅이가 비행접시가 그녀를 데리고 갔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나, '달나라'로 가자고 하는 아버지의 대사 등에서 비현실적인 것 같은 느낌도 많이 든다. 그 어려운 상황을 작가는 왜 이렇게 비현실적 요소를 통해 나타내려고 했을까?

 이는 극복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한다고 한다. 김병찬은 대립되는 두 세계의 화해가 어렵다는 것을 이 환상성을 통해 드러내려했다고 한다. 아울러 영희가 입주권을 훔쳐오는 과정을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방법으로 추구하는 모습'을 통해 진정성의 가치를 발견한다고 한다. 니부어도 말하듯 타락한 세계에서 한 명의 윤리적 개인이 그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비도덕적 세계 속의 도덕적 자아는 매우 작고 힘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갈등은 해결되기 어렵고, 정당한 방법으로 풀어내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노조 운동들이 불법을 저지른다고 많은 이들이 그들을 비난한다. 최근에는 화물연대의 파업을 놓고 물건을 볼모로 잡는다며 화물 연대를 비난하는 댓글들을 본 적이 있다. 불법에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두 교황의 내용을 인용하며 끝내려고 한다.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 그러나 누구도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나의 책임이 아니고, 당신의 책임이 아니라면 누구의 책임입니까? 그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사회적 모순들에서 우리는 과연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 현실의 부조리들은 모두 그 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문제들일까?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이에 우리는 더욱 인간적인 가치들을 잃어가고 있다. 자본에 의해 파괴된 연결고리를 다시금 이어야 할 순간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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