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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어머니 시, 어버이날 시 모음 (김초혜, 고정희, 김윤도)

by 짙음새 2023.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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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김초혜

 

한 몸이었다

서로 갈려

다른 몸 되었는데

 

주고 아프게

받고 모자라게

나뉘일 줄

어이 알았으리

 

쓴 것만 알아

쓴 줄 모르는 어머니

단 것만 익혀

단 줄 모르는 자식

 

처음대로

한 몸으로 돌아가

서로 바꾸어

태어나면 어떠하리

 

어머니, 나의 어머니

고정희

 

내가 내 자신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때

나직이 불러본다 어머니

짓무른 외로움 돌아누우며

새벽에 불러본다 어머니

더운 피 서늘하게 거르시는 어머니

달빛보다 무심한 어머니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릴 수 없을 때

북쪽 창문 열고 불러본다 어머니

동트는 아침마다 불러본다 어머니

아카시아 꽃잎 같은 어머니

이승의 마지막 깃발인 어머니

종말처럼 개벽처럼 손잡는 어머니

 

천지에 가득 달빛 흔들릴 때

황토 벌판 향해 불러본다 어머니

이 세계의 불행을 덮치시는 어머니

만고 만건곤 강물인 어머니

오 하느님을 낳으신 어머니

 

어머니

김윤도

 

새벽 기도 나서시는

칠순 노모의

굽어진 등 뒤로

지나온 세월이 힘겹다.

 

그곳에 담겨진

내 몫을 헤아리니

콧날이 시큰하고,

 

이다음에, 이다음에

어머니 세상 떠나는 날

어찌 바라볼까

 

가슴에

산 하나 들고 있다.

 

 

 사람은 점토와도 같아서 굳고 나면 손쓰기 어렵다.

 이 얘기는 한 어르신에게 들은 것인데, 그 어르신도 당신의 어머니께 들었다고 했다. 어르신의 어머니는 배운 것 없이 자라셨지만, 진실하게 살아온 삶이 가르침 그 자체였을 것이다. 진실로 어머니는 그 자체로 가르침이다. 부모가 아니라면 그 누가 그 냄새나고 더러운 기저귀를 말없이 갈아낼 것이며, 부모가 아니라면 그 누가 잠투정을 다정한 말로 감싸줄 것인가. 툭툭 튀어나오는 제 닮은 모습에 안타까운 듯 귀여워하며, 정성을 보이는 것이 세상 그 어떤 가르침과 비견할 것인가.

 성자가 되기는 아이를 돌보는 것만 한 것이 없겠다 싶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주상보시, 기독교에서 말하는 아가페, 공자의 인은 모두 어머니의 사랑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관점은 이토록 애틋하며, 나아가 아름다운 것이겠다. 누구든 짜증을 받아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짜증을 받아낸다는 것은 상대의 관점에서 녹아들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짜증 내는지를 고민하는 것은 그 자체로 상대를 생각하는 행위다.

 영아들의 언어는 울음소리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은 울음으로 대신한다. 울음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한다. 누구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것을 들으면 짜증이 솟는다. 그러나 어머니는 유연하게 울음에 묻는다. 

 응. 그래 그래. 엄마 여기 있어.

 어머니는 수시로 아이가 되어 본다. 아이가 찡그리면 같이 찡그려보고, 아이가 웃으면 함께 입을 벌려 크게 웃는다.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어머니의 재롱으로 확인한다. 아이의 첫 소통은 부모의 재롱이다. 

 에릭슨은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시기에 맞는 과제(발달 과업)를 잘 수행해야 올바르게 성격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영아기 때는 신뢰와 불신을 배운다고 하니, 어머니는 사회의 씨앗을 만드는 존재겠다. 사회는 신뢰 없이 존재하기 어려우니 말이다. 

 내 아버지께서는 생전 할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를 가득 갖고 있으시다. 이것저것 할머니를 위한다고 했던 것들도 할머니의 부재가 보잘것없게 만든 탓이다. 소중한 이의 부재는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한다. 그래서 못난 말과 못난 행동들이 함께 몰려와 부끄럽게 만든다.

 김윤도 시에서 나오는 '가슴에 / 산 하나'는 쌓인 숙제라 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것에 가깝다. 하해와 같은 사랑으로 부모님의 사랑을 비유하는 것이 그 무게를 가늠케 한다. 그래서 그것이 우리 삶을 무겁게 지탱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갚기 어려운 무거운 사랑을 대물림하며 그 속에서 진실하게 매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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