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목에 대하여
복효근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
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
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
그렇듯 얼마간 죽음에 빚진 채 삶은
싹이 트고 다시
잔뿌리를 내립니다.
꽃을 피우고 꽃잎 몇 개
뿌려 주기도 하지만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
큰 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
이제는
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위허위 길 가다가
만져 보면 죽은 아버지가 버팀목으로 만져지고
사라진 이웃들도 만져집니다.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
나는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기대어 산다는 것
기대어 산다는 것은 사뭇 씩씩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서 기대는 것이 연약함으로 여겨지게 된 것은 퍽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대어 산다는 것은 믿음에 근거하는 일일 것이고, 믿음에 근거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어 산다는 것이 씩씩해 보인다.
우리는 사라진 존재들에게 늘 빚지며 살아간다. 오늘 점심에는 하늘 몇 번 보지 못한 돼지들에게 빚졌고, 저녁에는 눈비 딛고 솟아난 채소들의 푸르름에 빚졌다. 빚지며 살아가는 것은 생명에 얽힌 그 모든 것들을 앗아가는 일일 테다. 다채로운 그 색깔들이 내 입을 거치면 색을 잃어 고약해지니, 감사한 마음으로 그들을 먹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식탁에서 늘 기도를 한다. 대단한 기도는 아니더라도, 나를 위해 희생된 생명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간단하게나마 전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생명과 에너지로 탈바꿈을 하는 것은 여간 신비로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을 먹으며, 날로 살아간다. 기대어 살아간다.
어릴 적 꿈을 여쭈면 아버지는 늘 '아빠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를 보면 늘 무서웠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아빠가 되고자 했다는 것이 신기하다 여겨지곤 했었다. 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싫은 이야기 한번 못하시고, 가슴속으로 송곳 같은 마음들을 안으면서 끙끙대셨다. 앓은 마음은 결국 한 순간 넘쳤지만, 늘 미안하게 사셨다.
기댄다는 것은 스스로가 대단치 않다는 것을 아는 일 다음으로 따른다. 스스로 대단치 않음을 아는 것은 부끄러움을 안다는 말과 같다. 부끄러움으로 미안한 마음이 있어야, 남들은 기댈 자리를 내어준다. 우리가 공유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다만 약한 모습, 못난 모습이 있기 때문에 서로 매여 살아 것이다.
혼자 살아온 것이라 생각 말고, 늘 겸손해야겠다. 내 존재함은 수많은 죽음이, 그리고 희생이 곁에서 함께 삭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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