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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님의 침묵, 한용운 (민족 시, 독립운동 시)

by 짙음새 2023.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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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불교의 철학은 향긋합니다. 천천히 씹고 음미하면 그 의미가 슬몃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뜻이 안 맞는 것을 통해 뜻을 드러내는 철학이라 느껴집니다. 그래서 곱씹을수록 그 의미가 깊어지지요. 이렇듯 역설의 철학은 탈무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탈무드에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가 나옵니다. '선(善)'이 방주에 타기 위해 부탁을 했다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지요. 그러나 노아는 짝을 찾아와야만 방주에 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악(惡)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선(善)과 악(惡)은 짝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모든 극단은 이어져 있다는 것이 성현들의 가르침입니다. 극단적인 선은 극단적인 악이며, 극단적인 쾌락은 극단적인 고통이고, 극단적인 미는 극단적인 추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에서 말하는 화자의 생각도 공감이 됩니다. 절절한 이별의 끝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반드시 애틋한 만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만남의 순간을 자주 경험합니다. 고독한 후에야 친구가 있는 법이고, 어두운 후에야 빛이 오는 것이 진정코 옳은 말이기 때문입니다.

 극단에서 놓여 한 치를 살필 수 없음에도, 전혀 다른 극단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한 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해에게서 이별이란 곧 만남의 행위입니다. 만해만의 고집처럼 느껴지지만 어쩐지 그 고집이 떳떳합니다. 그 떳떳함은 나아가 노래가 되어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믿음에 기초한 이 지독한 고집은 대상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느껴집니다. 님이야 어떻게 했든, 만해에겐 중요치 않습니다. 그저 님을 위하는 마음은 본인의 것이며, 그저 원망 없이 노래할 뿐입니다.

 시적 화자를 시인으로 두는 것은 많은 오류를 가져오나, 만해가 독립 운동을 했던 승려라는 역사적 사실을 배제하면 시의 맛이 심심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해석을 열어두고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며, 맛을 살려내는 것도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나 또한 만해의 '님의 침묵'에서 화자를 만해로 두고 해석해보려 합니다. 만해는 강제로 조국이 침탈당했던 시기를 온몸으로 감내했습니다. 총독부가 있는 방향이라 당신의 집마저 북향으로 지었다고 하는 지독한 독립 운동가라고 불리지요. 이러한 그에게 조국은 자기장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기장의 방향을 따라 나침반이 되어 좇은 것은 만해였을 것이고요.

 그는 조국의 독립을 우직하게 염원했습니다. 이러한 염원은 탄탄한 믿음에 근거한 사랑으로 나타납니다. 사랑만큼이나 애절하게 믿음이 필요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고,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만해는 사랑을 통해 조국을 생각했으니, 의도는 차지하고라도 절묘하다고 하겠습니다.

 변하는 사회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양 극단으로 이리 휘청 저리 휘정 사회가 소란하다지만, 그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결코 짓밟지 못하는 우직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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