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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43

바다가, 허수경 (바다 시, 사랑 시) 바다가 허수경 깊은 바다가 걸어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바다와 사람 오늘은 거제에 있는 매미성이란 곳을 왔습니다. 매미성은 태풍 매미가 왔을 때부터 지은 것이라 합니다. 이를 지은 사람은 그 근처에 사는 주민이라고 하는데 벽돌을 하나하나 쌓은 모양을 보니, 그분이 뚝심이 느껴지는 듯도 합니.. 2023. 5. 8.
어버이날 시 모음 (성탄제, 못 위의 잠) 성탄제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ㅡ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2023. 5. 7.
자화상, 윤동주 (성찰 시, 일제강점기 시)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부끄러운 하루를 보내며 어제, 오늘은 부끄러운 마음이 솟는 것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늘 말을 조심하라며 아이들에게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말실수를 해 아이에게 큰 상처를 남겼기 때문.. 2023. 5. 5.
침묵, 이해인 (언어 시, 사랑 시) 침묵 이해인 진정한 사랑의 말이 아닌 모든 말들은 뜻밖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때가 많고 그것을 해명하고자 말을 거듭할수록 명쾌한 해결보다는 더 답답하게 얽힐 때가 많음을 본다 소리로서의 사랑의 언어 못지않게 침묵으로서의 사랑의 언어 또한 필요하고 소중하다 말과 실천 뱉을 말을 주워 담으려면 얼마나 많은 말들이 필요할까요. 말을 속에 머금고 있으면 내가 말의 주인이 되지만, 말을 밖으로 뱉으면 말이 나의 주인이 된다고 합니다. 말이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순간, 삶은 오해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이지요. 이해인 수녀님은 말보다 침묵이 소중하다고 강조합니다. 이해인 수녀님이 말씀하듯, 침묵도 언어의 한 갈래라 하겠습니다. 머레이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언어적 표현보다 비언어적 표현들이 더욱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합니다.. 2023.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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