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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허수경, (표정 2, 청년과 함께 이 저녁) 혼자 가는 먼 집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며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2023. 8. 16.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병률 (사람, 사람의 재료) 첫 번째 근무했던 학교에는 조그만 산책로가 있었습니다. 가운데에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 주위를 보도블록으로 둘렀는데 초등학교 운동장 만했지요. 저도 가끔 학교 일로 속 시끄러울 때 선생님들과 걷곤 했습니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어떤 비밀이라도 품어줄 것 같아 그런지, 아이들은 저마다 보드라운 연애 이야기 하나쯤은 꺼내 놓고 있었지요. 그곳에 한 정자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곳에서 시 구절 나누기를 했었지요. "이거 내가 산 시집인데, 아무거나 하나 골라봐라 얘들아. 그리고 마음에 드는 구절 몇 소절 낭송해보재이" 그렇게 시를 낭송했지요. 그중 이병률의 '사람'이라는 시도 있었습니다. 그때 이병률 시인의 시를 알게 되었지요. 그 순간부터 이병률은 아이들과 제게 낭만을 선물해 준 시인이었습니다... 2023. 8. 7.
『노랑』오봉옥 (노랑, 한강대교 2) '요즘은 독해가 어려운 모호성을 조성하는 추세가 보편화되어 있다. 또 동어 반복의 타성에 빠지면 스스로 자기 자신의 아류가 돼 버리는 현상이 생긴다(유종호)'. 저는 농부 시인 서정홍을 좋아합니다. 그의 시는 참 쉬우면서도 거짓이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라 그렇습니다. 가끔은 다정하고도 쉬운 언어로 다가오는 친절이 반갑습니다. 단순함에는 눈높이를 맞추는 배려가 묻어 있기에, 그리 쓰는 게 오히려 어려울 때가 많지요. 이 시를 보고 저는 고마운 마음이 우선 들었습니다. 친절한 언어이지만 깊은 마음을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백자가 휘황한 무늬로 치장하지 않고도 아름다울 수 있는 것처럼, 이 시는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을 냅니다. 이 시인의 시들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감정의 이입과 사물의 관찰이 진지하면서도 밝게 느.. 2023. 8. 4.
『회복기』허은실 (회복기 1, 꾸다 만 꿈) 제주도에 여행을 갔습니다. 소소한 책방이라는 곳에 들렀더니 '숨겨둔 책'이라고 포장된 시집을 팔고 있었지요. 소개하는 글귀에 '이 책은 앓고 난 후, 조금씩 나아지던 기분 좋은 가벼움'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글귀가 맘에 들어 무턱대고 구매를 했지요. 포장지를 벗겨내니 '회복기'라는 시집이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내다 보니 소개했던 글귀보다는 내용이 무거웠습니다. 평론가(선우은실)의 말처럼 이 시집에는 사회적 사건들을 다룬 내용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못난 모습들이 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회복기라는 시집의 제목이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왜 회복기일까? '회복기 1'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 겨우 쓸 수 있을 것 같아 / 두 마음은 왜 닮은 것인지 /.. 2023.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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