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여행을 갔습니다. 소소한 책방이라는 곳에 들렀더니 '숨겨둔 책'이라고 포장된 시집을 팔고 있었지요. 소개하는 글귀에 '이 책은 앓고 난 후, 조금씩 나아지던 기분 좋은 가벼움'이라 쓰여 있었습니다. 글귀가 맘에 들어 무턱대고 구매를 했지요. 포장지를 벗겨내니 '회복기'라는 시집이었습니다.
찬찬히 읽어내다 보니 소개했던 글귀보다는 내용이 무거웠습니다. 평론가(선우은실)의 말처럼 이 시집에는 사회적 사건들을 다룬 내용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못난 모습들이 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회복기라는 시집의 제목이 궁금하게 되었습니다. 왜 회복기일까?
'회복기 1'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 / 겨우 쓸 수 있을 것 같아 / 두 마음은 왜 닮은 것인지 // 무너진 꽃자리 / 약이 돋는다'. 용서할 수 있는 것과 겨우 쓰는 것이 어떤 면에서 닮았을까요.
어쩌면 회복이라는 것은 자신의 상태를 다시금 돌리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내려놓음으로써 진실 앞에 놓일 수 있는 겸손이지 않을까 합니다. 증오를 내려놓고, 진실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이파리를 틔워낼 수 있습니다. 진실을 숨기기 바쁜 현대 사회의 모습을 보면서 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존재하는 일은 피곤해요 (···)
전구의 죽음은 잘못 산출된 불안정한 저항값
-「Ω, 패턴과 방향」 중
한 번 살기 위해 계속 피어 있는 것과
계속 살기 위해 한 번 지는 것
무엇이 먼저였나 (···)
닿지 않는 곳이 가렵다
-「꾸다 만 꿈」 중
짧은 잠을 자고 간
누군가의 머리 냄새
이제 그만 시들어도 될까
나는 너무 급하게 늙었어
-「물려 입은 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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