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자정이 지나서야
좁은 마당을
별들에게 비켜주었다
새벽의 하늘에는
다음 계절의
별들이 지나간다
별 밝은 날
너에게 건네던 말보다
별이 지는 날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들이
더 오래 빛난다
-지금은 우리가, 박준
-출처: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오늘 26살 이후로 연락을 끊고 지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당시에는 무엇인지 서로 다투어 연을 끊듯이 말을 해두었던 사이였다. 늘 남들에게 건네는 말보다는, 내가 속으로 만지고 있는 말들이 늘 말썽이다. 가만히 있다가도 문득문득 가슴을 툭툭 건드린다. 말과 맘에도 빛이 있나 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리워질 때 반짝반짝 빛이 나면서 눈 부시게 하나보다.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오랜만에 친구와의 연락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하루가 풍족한 듯했다. 그 친구는 오랜만에 나와 연락했는데도 어색하지 않아서 좋다는 말을 했다. 생기가 차오르는 하루였다. 내가 대학교 때 나의 부족함으로 잃은 친구는 2명이다. 그중 한 친구와 연락이 된 것이다. 그 당시에는 어쩜 그리도 서로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지 지난 시절에 대한 호기심으로 마음이 번진다.
박완서는 당신의 책에서 시간이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이 있더랬다. 인간관계에서 갈등의 상황은 모든 감정을 집중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상대 잘못으로 보일 때가 갈등의 순간이지 않을까? 그때 건네기 가장 어려운 말은 사과인 듯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사과할 수 있다는 것도 참 역설적이다. 감정을 그 순간에 잘 내려놓고 객관화시킬 줄 아는 사람은 어른으로서 성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감정을 내려놓고 양보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기대고 싶은 사람이 되는 듯하다.
그 친구에게 건네지 못한 말은 내 마음 속에서 잘 익어서 전달이 되었다. 앞으로의 일도 중요할 것 같다. 새로이 만들어낸 관계를 소중히 여기고 가꿔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다시금 놓치면 어쩌지 하는 마음도 든다. 그 친구가 나에게 '원래 메일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내가 마침 확인하는 순간에 메일을 보냈던 것이었다. 만약 확인하지 않았다면 1년 뒤, 혹은 그 뒤를 기약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득했었다. 그러나 그 친구와 나는 그 어려운 확률을 뚫고 다시금 만나게 되었다. 아마 이는 '나에게 빌어야 하는 말'이 하늘에도 닿은 것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서 인위적인 것들은 최대한 누르고, 인연으로 흘러갈 수 있게 나와 하늘의 말을 조화시켜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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