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가기 힘겨운 슬픔 있거든
꽃들에게 맡기고
부리기도 버거운 아픔 있거든
새들에게 맡긴다
날마다 하루해는
사람들을 비껴서
강물 되어 저만큼 멀어지지만
들판 가득 꽃들은 피어서 붉고
하늘가로 스치는 새들도 본다.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나태주
-출처: 시집 <꽃이 되어 새가 되어> (문학사상사)
오늘 학생이 준비해 온 시다. 읽으며 생각한 것이 김용택 시인이 사랑하는 시를 모은 시집이었다. 그 제목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가줄지도 몰라'였던 듯하다. 요즘따라 부쩍 사람들이 우울감을 많이 느끼는 듯하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희망이라는 것도 습관인지라, 유튜브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암울한 기사들을 보면 희망을 연습할 시간도 부족하다 싶다. 그러나 이런 우울감이 단순히 떠나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인 것 같다. 우울함 속에 갇혀있으면,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 그 어떤 희망의 목소리도 다 거짓으로 왜곡되어 들린다. 우울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 이렇듯 귀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OECD에서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상위권을 늘 유지하는 데는 이러한 우울감이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헬조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스스로 우울감에 침전하는 것일까?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책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라다크라는 부족은 그들만의 문화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것이 개입하자, 사람들 간의 연대가 사라지고 서로 돈으로 재고 따지기 시작하며 행복을 잃어갔다고 말한다.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쟁을 낳는다. 경쟁은 비교를 낳는다. 비교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불행이지 않을까? 늘 기준은 위로 향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고독하고 괴로운 것은 아마 이러한 구조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사는 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연대가 필수적인 요소다. 유시민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책에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고 말한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이 네 가지보다 중요한 것이 있을까 싶다. 나도 어릴 적 입시 교육을 받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인간관계였다. 지금도 나는 단절된 인간관계 때문에 늘 홀로 침전하는 시간들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 슬프게도 말이다. 그러한 결핍이 나를 이 공간과 이 시간에서 존재할 수 있게 만들었기는 하나 서글픔을 지울 수는 없을 것 같다. 가끔씩 나에게 슬픔과 아픔들이 찾아온다. 그때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자주 드는 게 사실이다. 그럴수록 나를 채찍질하는 것도 있다. '네가 선생인데, 네가 괴로우면 아이들은 누가한테 기대야 하니?'라고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나는 더욱 우울해져 울타리를 치는 듯도 하다.
최근 우울감에 대한 심리 치료는 우울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우울감을 적절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집에서도 관련된 시가 나온다. 여인숙이라는 시인데, 그 시에서 슬픔과 괴로움도 맞아들이라고 한다. 옳은 말이다. 슬픔 또한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우울을 객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블랙독'이라 부르며 우울을 객관화하는 방법이 우울감 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위의 시도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슬픔과 아픔을 꽃과 새에게 주는 모습에서 그것들을 객관화시킬 용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 모두가 슬픔에 젖어 살아가는 현대 사회, 희망이란 객관에서 시작됨을 기억하며 오늘을 살아야겠다.
위대한 것은 인간의 일들이니 - 프랑시스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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