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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우리 사는 지구, 회복할 수 있을까? - 생태 시 모음 (2)

by 짙음새 2023.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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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라

심장 저 깊은 곳으로부터

눈물 냄새가 차오르고

이내 두 눈이 젖어온다

 

흙은 생명의 태반이며

또한 귀의처인 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그를 사랑한 도공이 밤낮으로

그를 주물러서 달덩이를 낳는 것을 본 일은 있다

또한 그의 가슴에 한 줌의 씨앗을 뿌리면

철되어 한 가마의 곡식이 돌아오는 것도 보았다

흙의 일이므로

농부는 그것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겸허하게 농사라고 불렀다

 

그래도 나는 흙이 가진 것 중에

제일 부러운 것은 그의 이름이다

흙 흙 흙 하고 그를 불러보면

 

눈물샘 저 깊은 곳으로부터

슬프고 아름다운 목숨의 메아리가 들려온다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흙, 문정희

출처: 시집 『새떼』

 

 

이런 돼지가 살았다지요 반들거리는 검은 털에 날렵한 주둥이를 가진, 유난히 흙의 온기를 좋아하여 흙이랑 노는 일을 제일로 즐거워 했다는군요 기른다는 것이 실은 서로 길드는 것이어서 이 지방 사람들은 통시라는 거처를 마련했다지요 인간의 배변장소와 돼지 우리가 함께 있는 아주 재미난 방인 셈인데요 지붕을 덮지 않은 널찍한 호를 파고 지푸라기 조금 깔아준 방 안에서 이 짐승은 눈비 맞고 흙과 똥과 뒹굴면서 비바람 햇볕을 고스란히 살 속에 아로 새기게 되었다는데요 음식물 찌꺼기며 설거지 물까지 버릴 것 없이 모아둔 큰 독 속에서 한때 빛나던 것들이 제 힘으로 다시 빛날 때 발효한 이 먹이를 돼지가 먹고 돼지의 배설물은 보리밭 거름으로 이쁜 보리들을 길렀다는데요 그래도 이 짐승의 주식이 사람의 똥이었던 것은 생명은 생명에게 공양되는 법이라 행여 남아 있을 산 것들의 온기가 더럽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될까 두려운 때문이 아니었는지 몰라 나라의 높은 분이 보기에 미개하여 시멘트 네 포대씩 무상지급한 때가 있었다는데요 문명국의 지표인 변소를 개량하라 다그쳤다는데요 흔적이나마 통시가 아직 남아 내 몸 속의 방을 향해 손 내밀어 주는 것은, 똥누고 먹는 일이 한가지로 행해지는 그곳을 신이 거주하는 장소라 여긴 하늘 가까운 섬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의 방, 김선우

출처: 시집 『도화 아래 잠들다』

 

 

몇 행의 시라는 물건이

졸지에 만원짜리 몇 장으로 휘날릴 수 있는 시대에

똥이 곧 예술이 될 수 있고, 상품이 될 수 있는 이 시대에

쓰자, 그 까짓 거, 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짓거.

영혼이란 동화책에 나오는 천사지.

 

돈 엄마가 돈 새끼를,

자본 엄마가 자본 새끼를 낳는,

(오 지상을 뒤덮는 자본 종족)이 세상에서

자본의 새끼의 새끼의 새끼의 새끼가 시일 수 있다면

(모든 시인은 부복하라)

오 나는 그 새끼를 키워 어미로 만들리라.

인간이라는 고등 포유 동물을 넘어서는

(저 아리안족 같은) 고등 자본 동물을 만들리라.

 

곳곳에서 넘쳐나는 저 자본 동물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인간들이

자본파충류로 변해가는 것을,

오 내 팔뚝에 뱀의 살 무늬가 새겨지는 것을 지켜보는 이 슬픔.

새들도 자본 자본 하며 울 날이 오리라.

 

(나에게 뽀스또 모단의 방식을 가르쳐다오,

나는 왜 이렇게 정통적으로밖에 얘기할 수가 없는지.)

 

-자본족, 최승자

출처: 시집 『내무덤푸르고』(1993)

 

 

 오랜만에 내가 예전에 공부했던 작품들을 다시금 찾아봤다. 김선우의 '신의 방'은 내가 지난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작품이었다. 하도 반가워서 다시금 읽어보려 인터넷을 뒤적거렸더니, 구글에 이 작품을 분석한 블로그들이 주르륵 달렸다. 그중 한 글을 읽어보려 들어갔더니, 작품에 하이라이트를 치고 '자유시, 서정시' 등으로 갈래를 정리해두고, 온갖 밑줄에 설명을 달아 난도질을 해두었다. 내게 고등학교 때 시가 생명성을 잃었던 것은 외우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스로 느끼지 않고 각각의 해석을 달달 외우려니 시에 대해 알기 어려웠다. 지금도 고등학교 때 시를 생각해보라고 한다면 별달리 마음에 와닿은 시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블로그에서는 통시를 순환이 일어나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분석해 두었다. 물론 이는 매우 알맞은 표현이다. 하지만 순환이라는 의미는 그 글을 읽는 사람들마다 다른 법일 테니, 그 의미를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언어가 생명력을 얻으려면 자신의 표현으로 나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천편일률적인 자습서의 언어들은 우리들 경험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 점수를 받기 위한 언어들은 우리의 경험을 오히려 잘라내고, 추상적인 언어로 바꾸어 버린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경험과 언어는 죽는다. 그렇게 죽은 언어로 만든 교육. 일률적인 교육이 지금도 공공연히 일어나는 것이 참 서글프다. 유튜브에서도 이 작품을 하나하나 꼼꼼히 분석하며 '대조'라느니, '통사구조의 반복'이라느니 아이들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 뜬구름 같은 것들을 외우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강요는 아마 효율성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각각의 다른 아이들을 평가해서 좋은 대학을 보내야하고, 공정성이라는 이름으로 예술을 측정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오다 보니 개인의 언어가 훼손된 것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존 키딩이 말했듯 이러한 교육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필요할지 모르나, 인간으로서 꼭 추구해야 하는 아름다움이나 가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효율성의 결과로 획일화가 나타났다. 효율성을 가장 강조하는 사회 이념은 아마 자본주의이지 않을까? 자본은 효율을 기반으로 탄생한 이념이니 말이다. 그런 자본주의에 의한 교육이니, 개인의 언어가 중요하게 여겨질리 만무하다. 그런 폭력적인 언어로 우리는 다른 이들의 생각에 대해 관심을 가질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 효율성의 교육이 수많은 문제점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아마 다시금 생명력이 있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에코페미니즘은 현대에 가속화되는 환경 위기의 원인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생태학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내포한다. 나아가 여성적 가치의 발견과 실천을 통해 생태문제를 해결하려는 차별성을 갖는다(최승자 시의 에코페미니즘적 의미, 이혜원). 현재 지구는 심각한 위기에 놓여있다. 기후가 변화함에 따라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재해들이 지구촌 곳곳에 펼쳐지고 있다. 최재천 교수는 코로나 19도 기후변화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 동물들이 온대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하는 것이다. 기후 위기의 최종 종착역은 어디일까? 그것은 인류일 테다. 인류는 욕망으로 만들어낸 사회적 이념으로 스스로를 구덩이에 집어넣고 있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고, 그 위에 흙을 덮는데도 우리는 그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깨어나지 못하고 자본에 대한 맹신으로 스스로를 마비시키고 있는 것이다. 최승자의 시에서 보듯 '자본 파충류로 변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회복해야 한다. 인간성에 있는 다양한 면들 중에서 조화와 생명에 대한 가치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회복적 가치를 찾아내기 위해 조난희가 말했듯 에코페미니즘적 교육을 시에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조난희는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순환성'과 '생명력'을 회복하는 시에 대한 교육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순환성이란 김선우의 '신의 방'이라는 시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짐승의 주식이 사람의 똥이었던 것은 생명은 생명에게 공양되는 법이라 행여 남아 있을 산 것들의 온기가 더럽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될까 두려운 때문이 아니었는지 몰라'라는 구절에서도 보듯, 거름이 다시 작물이 되는 과정을 말한다.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고, 그 고리가 지속되는 것이 순환이라 하겠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어떠한가? 다들 모으기 바쁘다. 최근 소득 불평등 지수가 코로나를 거쳐 상승했다고 한다. 부유한 자들은 더욱 많은 재산들을 스스로 소유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순환이 어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재산을 비롯한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려 하는 것에서 어찌 나눔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눈물을 흘려야 한다. 순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의 욕심에 대해서 말이다. 문정희 시인의 '흙'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들을 주는 것 같다. '흙, 흙, 흙'하고 외치면 '하늘이 우물을 파놓고 두레박으로 / 자신을 퍼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말한다. 흙은 생명력이지 싶다. 누군가를 위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는가? 요즘은 특히나 그러한 눈물이 말라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전세 사기가 판을 친다는 흉흉한 소식들마저 들린다. 남의 처지에 대해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은 많겠으나, 진정코 눈물을 흘리기란 어렵다. 가까운 듯 먼 곳에 그러한 일들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마음 아파하면서도 실천적 노력은 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 듯하다. 손해보며 사는 것은 우리 사는 사회에서 진정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욕심이 우리를 이 지경으로 몰고 왔으니 돌이켜 보아야겠다. 효율성이라는 굴레 안에 살아가며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약자들이 있는가? 그들과 순환할 수 있는 용기를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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