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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우리는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by 짙음새 2022.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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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과 생명력

 윌리엄 워즈워스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바라건대 나의 하루하루가 / 자연의 믿음에 메어지고자'라고 말했다. 서로 헐뜯고, 부수고, 자랑하기 바쁜 현대 사회에 자연이란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요즘엔 특히 캠핑, 차박 등 자연에서 휴일을 보내는 내용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 자주 보인다.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연예인들이 산골로 가 바비큐를 해 먹는 모습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우리가 보기에 다 가진 것 같다고 여기는 그들도 불 가에서 고기를 구우며 고민과 시름에 잠기는 걸 보니, 사람은 다 비슷하게 살아가는가 보다. 그리고 제각각 얻은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 그토록 자연을 향해 마음이 가지처럼 뻗어가는가 보다. 그 고민을 언제든 받아주고 있는 자연이란 참 포근하고도 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앞다투어 건물을 세우고, 땅을 가르고, 차를 만들고, 공장을 짓는다. 또 자연이라는 넓은 그늘을 놔두고, 도시라는 좁은 그늘에서 쉬고자 밀쳐내는 세상을 보자니 참 역설적이다. 도시라는 공간에는 참 이해가 안 되는 일들 투성이이다. 최근에는 금리 인상에 따라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영끌족이라는 그 비싼 이자를 감내하면서, 아파트를 껴안고 있다. 피와 살이 집값 하락으로 하루하루 말라 가는 광경을 보는 그들의 심정이 어떠할까. 마음이 아픈 일이다. 열심히 살겠다고 일한 그들이 나날이 생기가 없어지는 것은 그들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생명력이 말라 가는 공간. 그리고 생명력이 말라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문제일 것이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놀던 나의 시간은 생명력이 넘친다. 그 공간은 수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도깨비 이야기에서부터, 실개천 이야기, 뒤란 이야기, 할아버지, 그리고 할머니, 가족들의 이야기가 가득한 공간이다. 이야기는 생명력을 양분으로 자라는 녀석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자연의 일부였다. 자연이 한시도 정지해 있지 않고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니까 우리도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농사꾼이 곡식이나 푸성귀를 씨 뿌리고, 싹트고 줄기 뻗고 꽃피고 열매 맺는 동안 제아무리 부지런히 수고해 봤자 결코 그것들이 스스로 그렇게 돼 가는 부산함을 앞지르지 못한다."

 주인공은 시골에서, 즉 자연에서 자연의 일부로서 살아간다. 그 공간은 순환과 흐름의 공간이고, 제 존재를 드러내려 다툼이 없다. 계절이라는 큰 흐름에 따라 자연 속에서 아이들은 성장한다. 자연을 보고 배우며, 자연으로 만들어진 언어로 성장한다. 아울러 자연으로부터 감정도 배운다.

 "내가 최초로 맞본 비애의 기억은 앞뒤에 아무런 사건도 없이 외따로인 채 다만 풍경만 있다."

 자연의 순환 속에서 배우며 자란 아이는 그 맑음으로 세상을 씻어낸다. 자연에서는 인위가 없기에 모순도 없다. 그러나 자연으로 벗어난 모든 인위들에서는 모순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그런 모순들을 아이들은 맑은 눈동자로 살피게 된다. 어른들은 친구들과 사이좋게 이야기하라고 항상 이야기했지만, 정작 그들은 늘 싸우고 있었다. 어른들은 늘 저금하고 아껴 쓰라고 이야기했지만, 정작 그들은 늘 돈이 부족했다. 

 살펴보니 자연과 어린 아이의 모습은 참 공통점이 많다. 순수하며 다툼이 적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사춘기는 날카로움, 예민함이라는 단어가 함께 떠오른다. 그러나 루스 베니딕트라는 학자는 「문화의 패턴」이라는 책에서 사춘기 또한 사회에서 만들어낸 개념이라고 이야기 한다. 이에 예시로 주드족을 들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어른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른이 되어 도시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가 그토록 자연을 그리워하고, 어릴 적의 순수한 웃음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것을 보면 자연 속에 살아가는 우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떠올려야 할 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위선의 세계

 오늘도 도시에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벌어진다. 도시의 수많은 아파트와 상가는 그 사건과 사고를 양분으로 삼아 성장하는 나무 같기도 하다. 슬픔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도시 건물들의 그늘에 가려 오늘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볕을 쬐지 못하고, 하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들은 그 작은 땅에서 땅따먹기에 바쁘다. 이미 노동으로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생겼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벌 수 있는 자본의 늪에서 그들은 오늘도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다. 기계가 되지 않기 위해, 건물을 사는 걸 목표로 하루하루를 힘차게 살아간다.

"실상 서울살이의 법도라기보다는 셋방살이의 법도였다. 눈뜨자마자 뒷간이 어디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변소는 안집 식구들이 다 다녀 나온 다음에 가는 거라고 했다. "

 나는 서울로 들어서자 새로운 규칙에 따라 살아야 되었다. 그전에는 없었던 서열과 계급에 대해 알게 되고, 놀지 말아야할 친구도 있다는 것을 어머니를 통해 알게 된다. 더욱이 어머니는 나에게 '너는 근지 있는 집 자식이다'라고 이야기하며 현저동의 아이들과 노는 것을 금기시한다. 이에 나는 동네에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다. 시골에서는 자연 속에 함께 하는 그 모든 것들이 동무가 될 수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인위가 조금씩 나를 속박하기 시작한다. 

어떤 아이가 쟤는 우리 동네서 처음 보는 아이라고 하자, 딴 아이들도 그래그래 하면서 나를 이상한 눈으로 흘끗거렸다.

 나는 현저동에 살고 있지만, 매동국민학교를 다니기 위해 친척집인 사직동에 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가정 방문은 사직동에서 해야 되었기에 가정 방문이 있는 날에는 친척집에 양해를 구하고 제 집인 척해야 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살아가기 위해 가장 필요했던 것은 '거짓'이었다. 그 거짓은 어머니의 바람이었던 '신여성'이 되어 세상에서 무시받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살아가도록 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거짓 위에서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현저동에서는 주소까지 옮겨가며 문안의 학교를 다닌다고 눈초리를 받았다. 하지만 그 거짓은 나를 점차 옥죄어오는 굴레로 변했다. 사직동 친척집 바로 옆에 반 친구가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그 친구에 의해 책이 잡혀 기를 펴지 못하고 '꼬붕' 소리마저 들으며 살아가게 된다. 거짓 위에 쌓은 삶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고, 무너질 수 있음에 불안감을 준다. 아이의 시각에서 느꼈을 그 불안감. 탄로 날까 노심초사하는 마음. 어른들은 아이가 잘 성장하기 바라는 마음에 많은 거짓들을 말하나, 결국 거짓 속에서 방황하는 아이의 심정을 놓친다. 

 헤아려보면 도시도 위선과 맞닿은 면이 있다. 도시는 그렇게 증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자격증, 이력서, 경력. 그 모든 것들이 효율성의 원리로 이해되는 도시에서 '나'는 끊임없이 증명을 강요당한다. 난 도시 자체가 모순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인간의 편리함을 위해 모인 공간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정이 말라간다. 매우 인간적인 목적으로 모였지만, 그 목적이 오히려 인간을 옥죈다. 특히 고독사 문제나 범죄 등이 뉴스 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씁쓸한 감정이 앞선다. 도시가 가진 모순. '나'는 그 모순을 어머니를 통해 느끼며 자연의 세계를 동경한다.

 우리는 거짓 없는 순수한 세계를 동경하며 살아간다. 순수한 사랑과 배려, 호기심.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을 늘 갈구하고 살아간다. 이 인간성을 보충할 수 있는 공간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서 잘 이야기해준다. 줄곧 이야기했던 효율성의 모순 속에서 빠져나와 인간으로의 여정을 떠나야할 때가 아닐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2021년은 한국 문학의 거목, 박완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 꼬박 10년이 되는 해다. 그의 타계 10주기를 기리며 박완서 문학의 정수로 꼽히는 연작 자전소설 두 권이 16년 만에 새로운 옷을 입고 독자들을 찾아왔다. 생전에 그가 가장 사랑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1992)와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1995)는 모두 출간된 지 20여 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한국 소설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이자 중·고등학생 필독서로 남녀노소에게 사랑받는 작품이다. 독자들의 끊임없는 애정으로 ‘160만 부 돌파’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운 이 두 권은 결코 마모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완성한 고(故) 박완서 작가를 형상화한 듯 생명력 넘치는 자연을 모티프로 재탄생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연작 자전소설의 첫 번째 이야기로, 1930년대 개풍 박적골에서 보낸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를 그리고 있다. 강한 생활력과 유별난 자존심을 지닌 어머니와 이에 버금가는 기질의 소유자인 작가 자신, 이와 대조적으로 여리고 섬세한 기질의 오빠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 관계를 중심으로 1930년대 개풍 지방의 풍속과 훼손되지 않은 산천의 모습, 생활상, 인심 등이 유려한 필치로 그려지고 있다. 더불어 작가가 1940년대 일제 치하에서 보낸 학창 시절과 6·25전쟁과 함께 스무 살을 맞이한 1950년 격동의 한국 현대사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고향 산천에 지천으로 자라나던 흔하디흔한 풀 ‘싱아’로 대변되는 작가의 순수한 유년 시절이 이야기가 전개되어갈수록 더욱 아련하게 그리워지는 아름다운 성장소설로, 박완서 문학의 최고작이라 일컬어진다.
저자
박완서
출판
웅진지식하우스
출판일
2021.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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