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 소개

세계를 깨고 마주하는 자아 - 데미안

by 짙음새 2022. 11. 5.
SMALL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나는 누구일까?'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입시 교육의 당위성을 몸소 증명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내가 어른이 되고, 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이 되고 비로소 보았다. 내가 지금껏 배운 중요한 지식들이 내 눈앞에서 힘을 잃고 쓰러져 가는 모습을 말이다. 내가 배운 지식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삶을 위한 지식들은 암기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20대 중반부터의 삶은 결핍의 연속이었다. 아마 20대의 실수로 만들어진 결핍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내 어릴 적 결핍들이 그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미뤄둔 숙제처럼 본모습을 드러낸 것이지 않을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와 함께 웃고, 누군가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따위의 일, 즉 인간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맹목적인 믿음과 경쟁으로 만들어진 차가운 것에 가까웠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참으로 고된 일이다. 이 질문을 생각하고 있노라면, '나는 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임상 심리학자 허지원은 '지금의 나와 비슷한 배우자가 눈 앞에 나타난다면 평생 함께 살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한다. 처음에는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당시 결핍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핍은 나에 대한 증오로 나아갔고, 이는 우울감을 안겨주었다. 선생이 되어서도 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 즉 결핍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나는 경남에서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조금 특별한 학교에 지원하게 되었다. 충남에 있는 한 고등학교인데, 그곳에서 나는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입시, 간판 위주의 교육보단 진실한 인간성의 회복을 목표로 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그 속에서 나는 함께 자라나고 있다. 나는 아이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해답을 조금씩 얻어가는 듯하다. 
 리촐라티는 실험에서 한 원숭이가 다른 원숭이 혹은 사람들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응하는 뉴런을 발견했다. 이에 리촐라티는 이를 거울 뉴런으로 이름 붙이고 그 특성을 연구했다. 나아가 거울뉴런은 사람에게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가끔 드라마를 볼 때 슬픈 장면이나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함께 슬퍼하고 함께 웃는다. 그리고 배우들의 감정을 마치 자기 것인 마냥 느낀다. 최근에는 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가 성행했다. 학교에 다니는 선생님이 이를 보고 슬퍼서 울었다고 내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공감을 일으키는 거울 뉴런 덕에 가능한 것이었다. 거울은 대상을 그대로 모방한다. 이에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모방하고 비출 수 있는 뉴런. 그래서 공감하는 뉴런을 거울 뉴런이라고 이름 붙인 것 같다. 
 우리는 타인과 공감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차츰 나의 존재를 찾아간다. 타인도 나에 대한 감정을 느끼고, 이를 표현하기 때문이다. 이에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거울들이 서로를 비추며 살아가는 공간이 바로 사회이지 않을까? 그리고 그것이 성장하는 과정이다. 피아제라는 교육학자는 자신의 아이들이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도식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도식은 스키마라고도 부르는데, 쉽게 세상을 이해하는 개념적인 틀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 스키마는 계속해서 분해와 결합을 반복한다. 자연과 그리고 사람과 상호작용하면서 스키마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계속 생겨나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도 아직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선과 악, 정치와 법률, 사회와 문화 등 이해할 수 없는 철학적 고민들이 가시를 두르고 내 앞에서 단단하게 버티고 섰다. 이에 대한 해답은 아마 내 스스로의 삶을 다시금 돌아보고, 내 세계를 부수는 작은 몸부림에서 시작될 것이라 생각한다. 스키마를 깨고, 내 삶을 확장해 나가는 것. 아마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진실을 마주하려면 자아의 초라한 모습에 대한 수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한 것은 그 모순되고 초라한 자아를 보듬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내게서 알은 무엇일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해 다시금 이 책을 집었고 나는 그 해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선과 악이란 존재하는가?

 아프락사스는 선과 악을 통합한 신이다. 그리스어로 쓰면 ΑΒΡΑΣΑΞ(아프락사스)에는 '365'라는 숫자가 들어있다고 한다. Α =1, Β=2, Ρ=100, Α=1, Σ=200, Α=1, Ξ=60으로 각각을 더하면 365가 된다. 이에 365가지의 미덕을 지닌 통치자로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아프락사스가 선의 신의 아니라는 것이다. 아프락사스는 선과 악을 함께 가지고 있는 신이다. 성장에는 악이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아이들은 선으로만 자라나지 않는다. 적당한 악과의 경계에서 아이들은 스스로를 발견하고 자아개념을 만들어 나간다.

 책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새는 성장하고자 하는 자아를 의미할 것이고, 세계는 그가 갖고 있는 스키마라고 생각한다. 스키마를 깨고 나온 새인 자아는 선과 악의 공존으로 나아간다. 성장의 과정과 결과는 결국 절대적인 선이라기보다, 양면성에 대한 자각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모순성의 자각, 선과 악을 함께 볼 수 있는 균형 있는 시각이 바로 성장인 것이다. 

 데미안은 '데몬'이라는 단어와 유사하다. 데몬은 우리말로 악마를 의미하는데, 우리의 자아 깊은 곳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 프로이트의 표현으로 빌려오자면 '욕망적 자아'인 원초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원초아를 도덕과 윤리에 의해 적절히 조절해 나가면서 살아간다. 모든 사람들이 욕망에 따라 빼앗고, 훔치고, 헐뜯는다면 인류는 문화를 낳지 못했을 것이다. 도덕과 윤리 덕분에 욕망을 적절히 통제하는 선에서 인류는 서로 협력을 하며, 사회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금욕과 절제라는 덕목은 중요하게 다루는 도덕이자 윤리, 철학이었다. 

 싱클레어가 크로머를 만나기 전, 가정은 도덕과 윤리를 축으로 만들어진 선한 공간이다. 그러나 사과를 훔쳤다는 거짓된 말을 한 뒤,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악의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힘의 논리가 지배되고 있는 공간. 즉 욕망의 공간이다. 크로머의 금전 요구와 이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순응은 선의 세계에서 박탈된 것에 대한 초조함과 불안함을 동반한다. 그 세계를 싱클레어는 지속적으로 오가면서 질문하며 자신을 돌아본다. 이러한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도식이 바로 선과 악의 융합으로 나아가, 성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선이라는 것은 악을 전제로 했을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개념이다. 노자의 말처럼 선과 악은 한 곳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사람의 본성을 다시금 찾아가는 것이 공부고 배움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사람의 본성은 어떨까? 맹자는 사람의 본성은 선하다고 이야기한다. 또 사람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지고 있고 이는 각각 인, 의, 예, 지로 발전한다고 한다. 선한 마음의 회복이 결국 공부라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순자는 우리의 본성이 악하다고 한다. 악하기 때문에 이러한 본성을 예로써 통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그 모두가 인간에 내재되어 있다. 욕망적인 자아와 도덕적인 자아가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 자아의 통합이 성장이다. 최근들어 생각하는 것은 욕망적 자아에 대한 적당한 위로와 긍정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어린이들을 보면 큰 걱정 없이 세상을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니체가 했던 말처럼 낙타, 사자, 어린아이의 단계로 인간은 변화한다. 선과 악이라는 것은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직 선의 존재는 인간에게 주어질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적당한 악과 공존하며 그를 다루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성숙이고, 오히려 인간다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23시에 퇴근했나요? - 나는 4시간만 일한다 (1)

무엇이 성공인가? 유튜브 광고를 보면 유독 '성공'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주식으로 성공한 삶,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삶, 갭 투자로 성공한 삶 등. 이러한 광고들은 부가 성공한 삶의 척도라

kowriter30.com

 

 

주체로서의 삶은 가능한가? (수레바퀴 아래서 - 헤르만 헤세)

놀이와 삶 인지 통제 이론에 따르면 내적 동기가 유발된 상태에서 외적 보상이 주어질 경우 학습 동기가 떨어진다고 말한다. 즉 동기는 자발성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자발적인 삶이 바로 주체적

kowriter30.com

 

LIST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