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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딴 이름이 되어 주세요 (「로미오와 줄리엣」, 셰익스피어

by 짙음새 2023.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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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낳은 세계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가 오로지 사랑만을 주제로 쓴 비극 작품이 바로 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하지만 이 비극에서는 비극의 침울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불타는 청춘의 정열과 아름다운 서정(抒情)만이 넘쳐흐르고 있다.

-양은숙(범우 출판사 옮긴이)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동안 연극, 뮤지컬, 영화 등 여러 예술 매체로 약 400년간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기에 그 내용에 대해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두 주인공이 보여 준 불꽃같은 사랑과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 죽음에까지 이르게 한 지고지순한 열정 때문일 것이다.

-한우리(더 클래식 출판사 옮긴이)

 


줄거리

 

오랜 세월 서로 반목해 온 몬터규와 캐풀렛 가문의 아들과 딸인 로미오와 줄리엣은 가면무도회에서 서로 첫눈에 반해 영원히 함께할 것을 맹세한다. 그러나 시비에 휘말린 로미오는 친구 머큐쇼를 죽인 티볼트를 죽이는데, 티볼트는 바로 캐풀렛 부인의 조카, 즉 줄리엣의 사촌이다. 이 사건으로 로미오는 추방형을 받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룻밤을 함께 보내고 로미오는 도피한다.

 

그 후 줄리엣은 파리스와 결혼시키려는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일시적으로 깊은 잠에 빠지는 약을 마시고 죽은 체한다. 로미오는 줄리엣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슬픔에 빠진 나머지 독약을 먹고 자살하고, 깨어난 줄리엣 역시 숨진 로미오를 발견하고 단검으로 가슴을 찔러 자살한다.

-민음사

 


인상적인 구절

 

아, 그들의 칼 스무 자루보다는 당신의 눈이 더 무섭지요. 당신이 정다운 눈길만 보내준다면

그들의 적대감 따위는 나를 해칠 수 없지요. 

 

 

오직 당신의 이름만이 나의 원수예요. 몬터규 가문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당신이지요. 몬터규라는 게 뭐야? 그건 손도, 발도, 팔도, 얼굴도 아니며, 신체의 그 어느 부분도 아니야. 아, 딴 이름이 되어 주세요! 이름에 뭐가 들어있어?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야. 로미오 역시 로미오라고 불리지 않는다 해도 그 이름하고는 상관없이 본래의 미덕은 그대로 지니고 있을 게야. 로미오, 그 이름을 버리세요.

그리고 당신의 어느 일부하고도 상관없는 그 이름 대신에 나 자신을 전부 차지하세요

 

 

아, 나의 애인이여! 나의 아내여! 당신의 꿀처럼 달콤한 숨결을 모조리 빨아 마신 죽음의 신도 당신의 아름다움에는 아직 힘을 미치지 못하고 있어. 당신은 아직 정복당하지 않았고, 두 입술과 볼에는 미의 깃발이 아직도 빨갛게 나부끼고 있으며, 죽음의 파리한 깃발도 거기엔 못 미치고 있지. 티볼트, 너도 피 묻은 옷을 입은 채 누워 있느냐? 아, 네 청춘을 두 동강이 낸 바로 이 손으로 너의 원수인 내 몸을 찢어 죽이겠는데, 내가 너에게 이것보다 더 큰 호의는 베풀 수 없지 않겠는가?

티볼트, 나를 용서해 줘! 아, 사랑스러운 줄리엣, 당신은 왜 아직도 이토록 아름답기만 한가? 

 


사랑의 신화

 

 사회적 인습을 극복하고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좇는 모습을 보면 숭고하다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간절한 비극이라는 점에서 인물들이 좇는 가치들을 여실히 살필 수 있는 작품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좇은 가치는 사랑이겠지요. 작품에서는 사랑을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숭고한 두 인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랑의 모티프가 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향유됩니다.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랑의 온전함이 훼손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죽음을 넘어서는 사랑’을 이룬 연인으로 찬미되고 ‘문학적 신화’로 살아남는다.’ 서경희는 그들의 사랑은 문학적 신화가 된다고 말합니다. 브룩은 기본적으로 이들의 사랑을 불순한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으니, 이와는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또 “두 연인은 불순한 욕망 때문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것이 아니라 ‘불운한 별자리 얽힌’ 운명 때문에 희생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그들의 사랑을 가여워합니다. 아울러 비극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운명을 능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행위자’가 아니라 운명의 ‘희생자’로 그려지는 만큼 소위 ‘성격이 운명이다’라는 성격 비극의 공식에 못 미친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하지만 그런 운명의 희생자로만 보지 않습니다.

 이미 알려진 전설을 빌려다 당대 삶의 숨결을 불어넣고 두 연인이 몸담고 있는 세계의 사회적 맥락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죠. 즉 로미오와 줄리엣은 각각 봉건적 가부장제가 규정한 성 역할로 사회화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두 가문의 불화는 이런 사회화 과정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강제한다는 점을 부각시킨다고 언급합니다. 로미오의 경우 자기 가문에 대한 충성과 원수 가문에 대한 증오로써 확립해야 하는 임무를 부여받습니다. 따라서 불화로 표출되는 가부장제적 질서는 청년들에게 불화에 가담하고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남성적 미덕인 용맹과 생식력이 발휘된다고 믿게 만들지요.

한편 여성의 경우, 봉건적 가부장제에 순응하는 길은 곧 가부장이 정해 주는 배우자와 결혼하여 상속자를 낳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풀렛의 가부장적 권위가 가장 폭력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은 곧 줄리엣이 패리스 백작과의 강제 결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때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과 결혼은 단지 두 가문의 불화 때문에 실현되기 힘든 일이 아니라 봉건적 가부장제 질서 자체를 위반하기 때문에 더더욱 이루어지기 힘든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두 연인이 기어이 비밀 결혼식을 올리고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그 결혼을 지키려 했던 모습을 보면 두 연인을 단순히 운명의 희생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 서경희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가부장제를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홍계월전」이나 「방한림전」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핵심은 봉건적 가부장제를 거스르면서 성취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어떤 면에서 특별한 사랑이냐는 것인데요.

 두 연인의 사랑의 특징 가운데 첫째는 두 연인의 나이가 어린 만큼 이들의 사랑도 그에 걸맞게 어리고 순수하고 미성숙한 면이 있는 사랑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둘째는 줄리엣의 적극성입니다. 당시는 부부간의 동반자적인 유대와 사랑을 강조하는 새로운 감수성이 생겨나던 시기였는데요. 그래서 남녀 간의 성적인 사랑을 긍정적으로 수용하고, 그 사랑의 완성으로서의 결혼을 찬미하는 낭만적 희극과 같은 장르가 발전할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사회 질서 중심이 아니라, 인간으로 그 중심이 넘어오던 시대의 가치가 담겨있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두 연인이 서로 사랑하는 데보다 죽을 준비를 하는 데 더 시간을 쓴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비극도 우리를 끌어들이는 좋은 작품으로 남게 되는 듯합니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의 사랑에 철저히 헌신하며, 바로 그 점에서 이들의 죽음은 특별한 성취로 자리 잡는 것이라고 서경희가 언급하듯이요.

 조지 엘리엇이 주장한 것처럼 셰익스피어의 창조성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인간성의 복합성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제시”한다고 말합니다. 즉 단순한 사랑 이야기, 비극으로 끝맺지 않고 우리들에게 깊이 닿아있는 것은 인간이 가진 복합성이라는 요소와 공명하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비극적 사랑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사랑을 이외의 다른 요소들을 벗겨내고 사람과 사람으로 진실한 만남을 꿈꾼 적이 있나요. 누구나 진실한 사랑에 매달리지만, 오히려 자신을 매달고 있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그러한 좌절은 의미가 없는 것일까요? 숭고한 좌절들이 인간적 가치를 지켜내는 것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종속도 그런 숭고한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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