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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3

봄비 시 모음 (2) (함민복, 도종환, 정호승) 어느날 썩은 내 가슴을 조금 파보았다 흙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 흙에 꽃씨를 심었다 어느날 꽃씨를 심은 내 가슴이 너무 궁금해서 조금 파보려고 하다가 봄비가 와서 그만두었다 - 봄비, 정호승 - 《시평》 2010년 여름호 슬몃 내리는 비 반가워 양철지붕이 소리내어 읽는다 씨앗은 약속 씨앗 같은 약속 참 많았구나 약속을 가장 지키고 싶었던 사람이 가장 그리운 사람이라고 내리는 봄비 마른 풀잎 이제 마음 놓고 썩게 씨앗은 단단해졌다 언 입 풀려 수다수러워진 양철지붕 물끄러미 바라보던 개가 온몸 가죽 비틀어 빗방울을 턴다 택시! 하고 너를 먼저 부른 씨앗 누구냐 꽃피는 것 보면 알지 그리운 얼굴 먼저 떠오르지 - 봄비, 함민복 - 함민복 산문집 간밤 비에 꽃 피더니 그 봄비에 꽃 지누나 그대로 인하여 온 것들.. 2023. 4. 5.
봄 타기 좋은 시 - 봄 시 모음, 봄 시 두 편 (1)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봄길, 정호승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꽃 한번 피우려고 눈은 얼마나 많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랴 싸그락 싸그락 두드려 보았겠지 난분분 난분분 춤추었겠지 미끄러지고 미끄러지길 수백 번, 바람 한 자락 불면 휙 날아갈 사랑을 위하여 햇솜 같은 마음을 다 퍼부어 준 다음에야 마침내 피워 낸 저 황홀 보아라 봄이면 가지는 그 한번 덴 자리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상처를 터뜨린다 -첫사랑,.. 2023. 3. 3.
맹인 부부 가수, 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 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는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 맹인.. 2022.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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