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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소개

누가 돼지라 하는가 (『노동의 새벽』, 박노해, 민중시)

by 짙음새 2023.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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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 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박노해

 

서평

 

『노동의 새벽』은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박노해의 첫 시집이다. 그의 시는 이 땅의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이룩하고자 노력한 고통의 산물이다. 여기에는 패배와 일어섬의 연속적인 과정 속에서 이제 참된 노동의 부활, 노동의 해방, 민주주의의 실현, 민족통일의 달성을 향한 부릅뜬 눈동자가 박혀 뚫린 가슴, 잘린 팔다리, 아니 혼백으로라도 기어이 그날에 이르고야 말겠다는 민중해방의 정서 그 자체가 뭉뚱그려져 있다. 이러한 대립과 해방, 통일의 민중 정서와 의지는 민중문학의 기본구조와 일치하여 이 시를 80년대 민중시의 한 절정으로 이끈다.

-『노동의 새벽』 서평

 

인상적인 시

 

대결

박노해

아늑한 사장실에서

책상을 마구 치며

노조를 포기하라고

개새끼들, 불순분자라고

길길이 날뛰는 저들의 머리 속은

기업주와 노동자는 사슴과 돼지처럼

결코 동등할 수 없다는

계급사상으로 굳건히 무장되어 있는지 모른다

 

묵묵히 일하고 시키는 대로 따르고

주는 대로 받고 성은에 감복하는 복종과 충직만이

산업평화와 안정된 사회를 이루는

훌륭한 노동자의 도리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이란

동등하게 존중하며 일치할 대 안정이 있고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서로를 받쳐 줄 때

큰 힘이 나온다는 걸

우리는 체험으로 안다

 

돈과 무력과 권력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 믿는

봉건적이고 독재적인 저들과

온 세상 관계가 평등과 사랑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믿는

민주적으로 단결된 우리와의

이 팽팽한 대결

 

계급사상이 골수에 박힌 저들은

가진 자와 노동자는 사슴과 돼지처럼

별종으로 구분되기를 원할지 모르지만

그대들이 짓밟고 깨뜨릴수록

우린 더욱더 힘차게

인간으로

평등으로

민주주의로

통일로

솟구치는

갈수록 뜨겁게 달아오르는

이 숙명적인 대결을

어찌한단 말이냐

 

인상적인 시구

 

어쩌면 나는 기계인지도 몰라

컨베이어에 밀려오는 부품을

정신없이 납땜하다 보면

수천 번이고 로봇처럼 반복동작 하는

나는 기계가 되어 버렸는지도 몰라

-「어쩌면」 중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중

 

일 온스의 실천

 

 나는 노동자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우선 경계하고 봅니다. ‘노동자라니, 우리는 근로자야.’라며 말입니다. 그리고 다들 노동자가 되기를 꺼리는 듯도 합니다. 편리하게 돈을 벌고, 편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볼 때 인간이 갖는 근원적인 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이러한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 부끄럽습니다. 인간을 긍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편리함을 추구하는 존재로 보니 말입니다. 참 서글픈 세상입니다. 누구나가 일하기보다는 그저 돈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합니다. 자본으로 벌어들이는 자본이 세계적으로 많은 병폐를 낳고 있는데 말입니다.

 박노해의 시집 『노동의 새벽』은 1980년대에 출간되었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비판하는 듯한 착각을 낳습니다. 그때의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고 모순의 몸집이 커져만 왔기 때문입니다. “박노해의 작품은 70년대 이래 이 땅의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현실을 극복하고 인간다운 삶의 세계를 이룩하고자 노력한 고통의 결실이다.” 채광석이라는 분이 쓴 이 시집의 평론 중 일부입니다. 노동 현실의 극복. 그것은 지금에는 이루어졌을까요? 무엇이 노동자를 노동자로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박노해 시인의 시들은 대립의 양상이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노동자들끼리 연결되고픈, 또한 평온한 저녁을 맞고픈 근로자들의 염원과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작업환경으로 인한 것입니다. 물론 2020년대로 넘어오면서 노동자들이 다툰 끝에 이러한 측면은 상당하게 개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아마 두 번째이지 싶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체적인 자각과 단결을 통해 인간다운 삶에의 염원을 성취하려는 근로자의 요구와 초과 이윤을 더욱 확대하려는 자본의 기본적인 욕구의 대립, 갈등입니다.

 인간다운 삶은 무엇일까요. 노무현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더러운 꼴 안 보고 사는 삶입니다. 정치인의 권력 다툼과 놀음하는 꼴 덜 보고, 제 삶만 챙긴다고 이웃들을 뒤주에 들어온 쥐처럼 대하는 꼴 덜 보고, 돈만 밝히는 못난 어른들 말에 현혹되어 제 목소리 한번 못 내보고 가련히 순응하는 청춘들 꼴 덜 보고 살아가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박노해의 시에서는 그런 목소리가 들어있는 듯합니다. 인간다운 삶의 세계를 향한 싸움으로서의 사랑 속으로 여지없이 녹아들어 도저한 민중해방의 정서로 통일되고 있지요.

 이러한 모순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분명히 드러난 구조적 모순들을 도처에 살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분단’입니다. 우리 정치사는 근현대로 넘어오면서 수없이 왜곡되었습니다. 그 왜곡의 시작은 분단, 친일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노무현이 꿈꾼 나라’라는 책에서는 우리나라 진보 정권이 늘 종북 세력이라는 프레임으로 공격받는 이유를 말합니다. 여기서 파생되어 우리는 노동 문제도 분단 문제와 분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지요. 우리가 노동 운동을 하면, 노동자들이 되려 ‘빨갱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합법적인 파업과 시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박노해는 그 구조적 모순을 알아챕니다. 노동현장의 대립과 갈등 구조가 가정, 사회, 민족, 그리고 경제, 정치, 문화 전체에 걸친 분단의 사회적 모순구조의 한 표출임을 똑똑히 인식하지요. 또 여기서 그 모순구조의 근원적 극복을 향한 절절한 염원과 의지가 자신의 구체적 삶 속에서 솟구쳐 오름을 시인은 충격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채광석은 박노해의 시를 피와 살에 뼈대를 더하듯 구체적 현장성에서 실천적 운동성을 가하여 감상적 호소나 단순한 고발의 차원을 벗어나 민중해방의 정서와 의지로 발돋움하고 있으며, 민중적 리얼리즘의 위대한 승리를 창출해 내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문학적 상상력이나 감수성이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며 참다운 민중 정서는 어떻게 획득되는 것인가를 선명히 알 수 있지요. 그것은 관념적 통박 놀음이 아니라 자기 삶의 터전에서 전개되는 대립, 갈등에 주체적 실천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의 한복판 바로 거기서 출발해야 하며, 또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상상력, 감수성, 민중 정서가 획득되는 것임을 이 시집은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앎으로 나아가려면 모순들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박노해가 민중 정서를 획득한 방법을 통해 알 수 있을 듯도 합니다. 방법은 참된 자각을 통해, 민중의 삶에서 구체적인 모순들을 하나씩 지워내려 작은 실천들이라도 해내는 곧은 삶입니다. 그러나 작은 실천이라도 늘 실천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삶의 관성보다 무서운 것은 생각의 관성이기 때문입니다. 흐르던 생각들에 잠시 돌멩이를 던져 저항할 때입니다. 돌멩이 하나는 물길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돌멩이가 어디로 사라지지는 않겠지요. 분명, 쌓이고 쌓일 겁니다. 그리고 그 쌓인 것들이 결국 물의 흐름을 바꿀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일 온스의 실천이 일 톤의 멋진 이론보다 값지다는 슈마허의 말처럼 말입니다.

 

<참고 서적>

1) 노무현이 꿈꾼 나라, 동녘

2) 노동의 새벽, 풀빛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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