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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시2

무밭에 서서 - 최문자 깊은 산에 와서도 산보다 무밭에 서 있는 게 좋아 푸른 술 다 마시고도 흰 이빨 드러내지 않는 깊은 밤의 고요 그 목소리 없는 무청이 좋아 깨끗한 새벽 저 잎으로 문지르면 신음소리 내며 흘러내릴 것 같은 속살 밤마다 잎에다 달빛이 일 저질러놓고 달아나도 그때마다 흙속으로 하얗게 내려가는 무의 그 흰 몸이 좋아 땅속에 백지 한 장 감추고 있는 그 심성도 좋아 달빛이 놓고 간 편지 한 장 들고 무작정 애를 배는 대책 없는 미혼모 같은 배 불러오는 무청의 둥근 배가 좋아 무밭을 걷는 게 좋아 내 정강이 툭툭 건드릴 때 좋아 뽑으면 쑤욱 뽑힐 것 같은 철없는 그 사랑이 좋아 -무밭에 서서, 최문자 오늘 학교에서 생선가스가 나왔다. 마음에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왔다. 반찬 투정을 잘 하지 않으나 계속 반복되어 .. 2023. 3. 28.
정말로 사랑한다면 - 사랑에 관한 시 모음 (2) 은행나무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부르면 안 되나 비와 바람과 햇빛을 쥐고 열심히 별을 닦던 나무 가을이 되면 별가루가 묻어 순금빛 나무 나도 별 닦는 나무가 되고 싶은데 당신이라는 별을 열심히 닦다가 당신에게 순금물이 들어 아름답게 지고 싶은데 이런 나를 별 닦는 나무라고 불러주면 안 되나 당신이라는 별에 아름답게 지고 싶은 나를 -별 닦는 나무, 공광규 출처: 시집 《담장을 허물다》 (창비, 2013)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2023.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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